혁명은 놀랍게도 반동으로 귀결되곤 했습니다. 4.19혁명은 일년 뒤 5.16 군사쿠데타로 종언을 고합니다.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민주화운동은 전두환 군사독재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6월 항쟁은 3김의 분열로 군복을 벗었을 뿐인 ‘준 군사정권’의 탄생을 막지 못했습니다. 혁명이 숨가빴던 만큼 그 반전도 숨가빴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민주공화국을 유린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임박했습니다. 국회에서 탄핵 소추가 의결되면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됩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을 내리기까지 몇 개월 동안 별의별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개헌 논의가 불붙고, 여야 대선주자들의 이전투구도 본격화할 것입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탄핵 소추라는 ‘절반의 퇴진’, 대통령이 아직 물러나지 않은 ‘미완의 혁명’에 대해 입장이 갈릴 것입니다. 한마디로 얼마나 많은 국민이, 언제까지 계속 광장에서 촛불을 들 것이냐는 것이죠. 집회 참석을 망설이게 하는 엄동설한도 곧 닥칩니다.

이제,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촛불을 들었던 이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서였나. 아니면, 민주공화국을 지키기(혹은 세우기) 위한 것이었나. 이 두 질문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릅니다. 전자는 저항이고 청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악을 파괴하는 것이고, 본질적으로 네거티브(negative)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악당을 처단하는 것이죠. 반면, 후자는 구축이고 건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을 공고히 하는 것이고, 포지티브(positive)한 접근입니다. 악인을 치죄(治罪)하는 데서 더 나아가 악인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혁파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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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신에게 촛불을 들었던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어서, 꼴 보기 싫어서 등등 많은 이유들이 떠올랐습니다. 좀 더 생각해보니, 무언가 바라는 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가치였습니다. ‘민주’란 국민이 주인이라는 것이고, ‘공화국’이란 공동체의 이익이 목적인 나라를 뜻합니다. ‘내가 외친 구호는 대통령 퇴진이었지만, 진심으로 원하고 있는 것은 민주공화국에서 사는 것이구나.’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대통령이 퇴진하면 민주공화국이 오는가? 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싶어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결국 제가 내린 결론은 대통령의 퇴진은 시작일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을 퇴진시키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을 퇴진시킨다고 해서 뭔가가 이뤄지는 것도 아닙니다. 엄밀히 말해 둘은 관련이 있지만, 인과관계에 있지는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엇을 원하고 계십니까?

해리 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소설가 조앤 롤링은 2008년 미국 하버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아는 것과 진짜 친구를 알아보는 것이다.” ‘시민혁명’에 참여하고, ‘촛불 집회’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탄핵이 목전에 다가온 지금,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모여 탄핵 이후 우리가 해야 할 바가 정해지고,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에 대한 그림이 그려질 것입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한 개방형 정치 플랫폼(platform)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고, 국민을 자주 배신하는 대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보완할 직접 민주주의 요소의 도입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으며, 국회와는 차원이 다른 시민 공회(公會)같은 아이디어도 검토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시민 혁명의 열기를 담아내고 민주공화국을 만들기 위한 정치적, 제도적, 조직적 대안들에 무관심하면 혁명의 과실은 여야 정치권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들이 누리게 될 것이고, 결국 민주공화국의 꿈은 또 다시 멀어질지도 모릅니다. 혁명은 그 이후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윤순환 러브레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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