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가 된 미국(Crippled America)'은 트럼프의 17번째 저술이다. 그의 저서 대부분은 자기의 성공에 기반을 둔 사업 이야기인데 비해, 이 책은 정치에 몸을 던지며 자기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선거운동 기간 중 과장된 몸짓과 어법으로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 가운데 즉흥적이거나 일관성이 결여된 곁가지를 제거하고, 이 책에서 강조하는 일관된 주장들을 살펴보면 향후 그의 정책이 보일 듯싶다.
아직 발효하지 않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폐기는 거의 기정사실로 보이며, 폐기 시 일부 당사국들과는 미국에 더 유리한 내용의 양자 무역협정을 추구할 수도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탈퇴,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주장도 빼앗긴 일자리를 돌려받고 무역수지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이어서 어떤 형태로든 시도가 있을 것이다. 상호방위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들에 대한 으름장에도 회원국들이 조약상의 의무분담금(GDP의 2%)을 납부하라는 촉구가 깔려있으며, 일본과 한국이 미군 주둔경비를 더 부담하라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향후 대외정책이 다듬어지는 과정에서 유럽, 아시아와 전통적 동맹외교의 근간은 유지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외교정책도 철저히 이해타산에 입각한 거래가 될 것은 분명하다.
한반도 문제는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추가 도발이 없다면, 우선순위에서 이민, 의료보험 등 국내문제나 ISIS 격퇴 등 강경한 중동정책에 밀려 뒤쳐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이란 핵합의에 대해 당사국들이 핵시설 완전해체 등 강경한 대응으로 이란 지도자로 하여금 협상을 애걸하는 지경에 이르도록 몇 배 더 강한 제재를 밀어붙여야 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 대목은 북한 핵문제 해결방향의 시사점이 될 수 있다.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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