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제목도 그렇고 본문도 그렇고 이상(李箱)의 어법을 빌려 쓴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꼭 이상을 끌어당겨 읽을 이유는 없다. 그리고 이 시를 두고 독자적인 가치가 부족하다고 곧바로 폄훼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 시는 좁게 말하자면 시에 대한 시일 수도 있고, 넓게 보자면 우리의 삶 혹은 우리가 이룬 세계와 그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근원적인 틀에 관한 시일 수도 있다. 좀 더 말하자면 그 심연에 어른거리고 있는, 감히 들추어서는 안 되는 그 무엇에 대한 시일 것이다. 이 시는 그만큼 커다랗고 본질적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사랑과 구별되지 않는 저 추잡한 욕망의 행태들, 가족의 밑바닥을 더듬다 보면 결국 드러나고야 마는 강요와 희생들,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히 자행되는 폭력과 그에 기생하고 있는 도처의 협잡들,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런 "문자"들은 마치 '사각'에서 문득 나타나는 듯하지만 실은 우리의 삶 "한복판에 있"고, "적출된 눈알"처럼 오히려 우리를 고통스럽게 쳐다보고 있으며, "피할 수 없는 얼음 구멍"들로 다름 아닌 "바로, 저기에" 그리고 우리의 "발밑"에 있다. 직시해야 한다. "건드리면 철철 썩어 내리는 문자"일지라도 그것이 바로 우리이고 우리가 지양해야 할 우리니까 말이다.
채상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