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유려하다. 물 흐르듯 흐르는 문장이란 아마도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달리는 바람"이, '가지'가, '버찌'가, '새'가, '뻐꾹새'가, '공중'이, 그리고 마침내 "양철 지붕 위 쉬는 바람"까지 한 줄로 거침없이 엮이는 문장들을 읽고 있자면, 신작로를 따라 바람결에 잎잎이 연달아 나부끼던 플라타너스들이 생각난다. 아름답다고 적을 수밖에.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대부분 단문으로 이루어진 이 시 곳곳에 툭툭 박혀 있는 "통증"과 관련된 시어들, '부러지다', '떨어지다', '울다', '울음', '숨죽이다', '똬리', '멍하다', '죽다', '상여', '날뛰다', '울부짖다', '사그라지다', '멈추다', '쉬다'에 눈길을 두고 있자면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오래고 거대한 고통의 원 하나가 떠오른다. 그 안에 "감자 캐다 퍼져 버린" "땀에 젖은 너의 등짝"이 있다. 아마도 "알 수 없는 통증"이란 그 정도를 감히 헤아릴 수 없다는 맥락일 것이다. 아름답고 또한 지극히 고통스러운 시다. 문득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그 땡볕이 내리쬐던 감자밭이 일렁인다.
채상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