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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태양, 달을 살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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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별 기능을 하지 못한다. 대개의 경우 그저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 붙여서 부르는 말에 불과하다. 스스로가 선택하지 못한 채 태어나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이름 지어져 세상에 등록된다. 개명을 원하는 사람도 급증하고 있다.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최근 3년 동안 3배가량 늘어났으니 부모가 지어주신 이름에 불만이 많은가보다.

 기업과 정당, 학교 등 사회단체도 거창한 이름을 선호하다보니 이름값 못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대기업들의 거액 출연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어느 재단도 이름을 바꿀 모양이다. 이름을 바꾸면 문제가 해결될지 모르겠으나 작명을 할 땐 부디 어깨에 힘부터 뺄 일이다.
 개성 있는 새 이름을 짓고 싶다면 대한민국 인디뮤지션들의 이름을 참고해 볼 만하다. 가히 예술의 경지다. 언니네이발관, 내귀에도청장치, 허벅지밴드, 브로콜리너마저, 옥상달빛, 장미여관, 윤딴딴, 검정치마, 못 등 등 개성만점이다. 비슷비슷한 음악은 사절한다는 결의에 찬 이름일 것이다. 이들의 선배인 신중현과 엽전들, 사랑과 평화, 산울림, 들국화, 서태지와 아이들 등과 비교해 보면 세대 차이를 확실하게 느낄수 있다.

 눈을 돌려 해외의 사례를 살펴보자. 전무후무한 슈퍼밴드 비틀스(Beatles)가 귀여운 딱정벌레 비틀(Beetle)을 변형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같은 이름의 독일 자동차가 2차 세계대전에 처음 등장해 아직까지 세계적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을 보면 좋은 이름이 확실하다. 이달 초에는 '더 비틀스 앳 더 할리우드 볼'이라는 유일한 공식 라이브앨범이 40년 만에 출시됐다.

 이름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작명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롤링스톤스(Rolling Stones)는 정말 잘 지은 이름이다. 산울림, 들국화처럼 소박하며 심지어 촌스럽기까지 하지만 이름 그대로 '이끼가 끼지 않은 채' 54년째 구르고 있다. 아직까지 공연 수입이 1ㆍ2등을 다툰다.
 민망한 이름도 있다. 프린스(Prince)의 원래 이름은 프린스 로저스 넬슨. 이름 뒷부분을 싹 빼버리고 스스로 '왕자'에 등극한다. 틴에이지팬클럽(Teenage Fan Club)이란 아주 노골적인 야망(?)의 이름을 지닌 그룹도 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십대사생팬쯤 되겠다. 야망으로 친다면 이 친구들이 최고다. 아메리카 합중국 대통령(The President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선거 유세 때 록 음악을 즐겨 사용하는 트럼프는 왜 이 친구들을 섭외하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입에 담기 민망한 이름도 있다. 미국의 인디 록 밴드 F**k. 무슨 생각으로 이런 불량한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겠으나 음악은 나쁘지 않다. 한 술 더 떠 Holy F**k이라는 그룹도 있다. 일렉트로닉 음악을 연주하는데 국내 클럽에서도 가끔 그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이밖에도 록 음악 팬들에게 익숙한 이름들. 음향청춘(Sonic Youth), 총과 장미(Guns and Roses), 열반(Nirvana), 소리정원(Soundgarden), 기계에 대한 분노(Rage Against the Machine) 등은 뭘 좀 알고 지은 이름들이다.

 자, 이제 이름 종결자를 소개한다(사실 이 이름을 소개하려고 구구절절 여기까지 떠들었다). 태양, 달을 살해하다. Sun Kil Moon. 미국 싱어송라이터 마크 코즐렉이 결성한 밴드이다. 밴드 이름은 마크 코즐렉이 한국 권투 선수 문성길의 이름을 따라 지은 것이다. 권투 팬인 그는 권투 연감을 뒤적이다 우연히 성길 문(Sung Kil Moon)을 발견하고 "시처럼 아름다운 이름"이라며 그룹의 이름으로 결정했다. 1982년 경기 도중에 세상을 떠난 김득구에 바치는 헌사 '득 구 김'(Duk Koo Kim)은 심금을 울린다. 이들의 노래 중에는 '출구는 존재하지 않는다(Exit Does Not Exist)'라는 곡도 있다. 신문 제목 달면 잘할 친구다.

임훈구 편집부장 keyg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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