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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무늬를 위한 시간/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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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들락 말락 할 때
누군가 날 보고 있다는 느낌
그럴 때 살며시 눈을 뜨면 천정의 무늬는 가만히 내려와
내 곁에 눕는 것이다

눈과 눈 사이에도 말할 수 없는 적막의 무늬가 있어
한 눈이 다른 눈 속으로 자신의 무늬를 찾아 헤매는 밤
어떤 무늬는 내 방을 몰래 다녀간 사람이 흘린 그림자 같기도 하고
혼자 있을 때 손톱이 까매지도록 만지는 그늘 같기도 하다
나는 젖은 아가미를 두고 온 물속 물고기였는지
입을 벌리면 입속에 고인 무늬들은 물비늘 털며 창문을 열고 날아가 버린다 어쩌면 나도,

예전 누군가의 무늬를 그리워하며 영원히 우주를 떠도는 건지

이 방을 서성이는 무늬의 행로는 불을 켜면 놀라 달아났다가
어느 날 불쑥 돌아와 가만히 내 눈에 젖은 먼지 하나를 눕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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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文)'이라는 한자어는 '글'이라는 뜻으로 주로 사용되지만 원래는 '무늬'나 '얼룩'을 뜻했다. 이런 맥락에서 말하자면, '천문학'은 하늘의 무늬 곧 해, 달, 별을 다루는 학문이다. 땅의 무늬, 예컨대 산과 강과 들을 연구하는 지리학도 개화기 때에는 지문학이라고 일컬었다. 인문학은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문(文)'의 원래 뜻에 비추어 인문학을 사람의 마음의 무늬를 헤아리는 공부라고 해 보면 어떨까. 내 마음에 그리고 내 몸에 새겨진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흔적들을 차근차근 더듬어 보고 그 사연들을 자꾸 궁리해 보고 마침내는 따뜻하게 감싸 안을 수 있는 자락을 스스로 펼치는, 펼칠 수 있게 되는, 그런 공부 말이다. 그리고 꿀팁 하나! 그런 공부는 "잠이 들락 말락 할 때" 가장 잘된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마음만 잘 열어 두면 이루어진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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