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이야기 잘 하시는 어른을 보았나. 저 칼같은 기승전결이 어김없이 사람을 사로잡는다. 문인수의 '경운기 소리'라는 시다. 경운기 몰고 나가 일하시다가 점심 먹으러 들어왔는데 외출한 할머니가 아직 귀가하지 않아 혼자 밥을 차려먹은 할아버지. '기'는 참 평범한 일상이다. 무슨 얘길 하려 저러시나 하는 기분으로 만나는 도입부다.
그런데 반전이다. 예고도 하지 않고 바로 급진전되는 바람에 더욱 놀랍다. 할머니가 바로 쓰러진 할아버지를 얼싸안아 일으키는 장면이다. 구급차가 왔을 땐 숨을 거뒀다. 이 '전'의 상황이 되면, 아까 점심 못 차려준 일이 얼마나 애통해졌는지 느껴진다. 혹여 그것이 저승길을 재촉했는지 할머니의 자책 또한 글자 밑에서 한스럽게 뚝뚝 떨어져 나온다.
'결'은 또 하나의 반전으로 아리는 마음을 더욱 키운다. 아침에 노부부가 나눈 대화이다. 경운기 시동이 참 잘 걸린다고 할머니가 말해줬더니 "그래, 기분이 좋구만." 했던 그 말. 이제 경운기만 바라보면 그 말이 생각나고, 영감님이 눈물로 터져나올 판이 됐다. 그놈의 경운기가 영감님을 보내려고 그토록 시동이 잘 걸렸던가. 그 '소리'가 새삼 원망스럽다. 아니, 영감님이 세상 하직할 걸 부지불식간에 예감하면서 나더러 안심하라고 "그래, 기분이 좋구먼" 했던가. 그 소리 좋던 경운기를 소처럼 이랴 이랴 몰고 밭고랑 누비느라 저승 흙 파는 것인 줄도 몰랐던가. 할머니 통곡 속에서 경운기 소리 듣는 옆사람도 눈물 훔칠 지경이다.
상복을 입고 "그래, 기분이 좋구먼"의 할아버지 마지막 말씀을 되뇌며 눈물 쏟아내는 어수선한 별사를 시의 행간 속으로 쟁여넣었을 것이다. 사는 일, 혹은 그 뒤의 일. 이 일 말고 또 뭐가 있는가. 서울서는 들을 수도 없는 경운기 소리가, 한번에 드르륵 시동 걸린 그 소리가 귀에 자꾸 들린다.
빈섬(이상국 디지털뉴스룸 부국장) isom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