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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호의 제언⑦<끝>]저무는 산업화 신화…공정경쟁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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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호 보고펀드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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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우리나라도 눈부신 경제 성장을 한 때가 있었다. 이때 우리의 전략은 '자본 집약적인 산업을 통한 선진국 따라잡기'였다. 기술보다는 돈을 투입해서 장치를 만들고 그 장치를 통해서 돈을 버는 방식이었다. 제철소를 건설하고 석유 화학 단지를 만들었다. 목표는 선진국의 선두 기업을 따라잡는 것이었다. 일본 소니의 TV를 분해해 보고 같은 제품을 만들면 됐다. 목표가 간단했고 달성 가능하게 보였다. '하면 된다'는 기치 아래 열정적으로 일했다.

정부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세금을 깎아주고 금융을 제공했다. 공장 부지도 제공해 줬다. 노사분규가 있으면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줬다. 정부와 끈을 가진 기업 중심으로 경제가 성장할 수밖에 없었고 정부는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다. 공정한 경쟁이나 '법 앞에 평등'이 필요하지 않았다. 불공정한 특혜를 기반으로 하는 불균형 성장 전략이었다. 목표 지향적인 일사불란한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움직였다. 군대식 관료 체제인 재벌 체제도 효과적이었다.
'따라잡기'의 결과 우리 산업은 세계 선두가 됐다. 이제는 애플과 일대일로 싸워야 한다.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헤쳐 나가야 한다. 땀이 필요했던 과거와는 달리 실력과 능력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그럼에도 '따라가기'에 익숙해진 생각과 구조는 변하지 않았고 우리는 번영의 길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30년 전 일본이 겪은 경험과 유사하다. 중국도 우리의 산업화 전략을 따라왔다. 자본 집약적인 산업에 투자를 했고 장치·설비를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와 중국은 이제 역전의 위치에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산업화 모델을 자랑스러워했다. 후발 개발도상국들이 우리의 모델을 따라 산업화를 추구했고 상당한 성과를 올린 나라도 많다. 하지만 이런 모델의 신화는 여기에서 끝내야 한다. 동네 축구에서는 열심히 뛰면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월드컵에서는 다르다. 박지성 선수와 같이 잘하는 선수로 대표팀을 구성해도 우승은커녕 조별 예선도 통과하기 힘들다. 열심히 땀 흘리는 것만으로 월드컵에서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없다. 오직 실력을 연마해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과거의 산업화 전략과는 정반대로 가야 한다. 정부가 중심이 돼 일부 특정 세력을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방식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더욱 촉진시킴으로써 박지성 선수를 뛰어 넘는 선수들이 더 큰 역할을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줘야 한다.

로마의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1세기 원로원 연설에서 "우리가 오랜 전통으로 믿고 있는 일도 처음에는 모두 새로운 것이었다"면서 "출신지가 어디든, 출신 부족이 과거의 패배자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인재를 흡수해 활용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우리 조상들은 이미 보여주었고 지금 우리에게도 유용한 통치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2000년 전의 이야기이다. 우리도 산업화 세력이든 민주화 세력이든 호남 출신이든 영남 출신이든 초등학교 출신이든 박사학위 보유자이든 나이가 적든 많든 모든 것을 뛰어넘어 오직 성과와 능력만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럼 다시 도약할 수 있다. 성과와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정부가 지원해 주어야 한다. 국내의 인재뿐 아니라 외국의 인재까지도 영입해서 활용하는 나라가 되면 더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
17세기 전반 세계 최강국이었던 네덜란드를 생각해 본다. 경상도보다 약간 큰 나라, 인구 200만명밖에 안 되는 나라, 국토의 4분의 3이 바다보다 낮은 나라, 유용한 천연자원도 거의 없는 나라였다. 군사적으로는 최강의 나라는 아니었지만 경제적으로 세계 최강의 국가였다. 그 당시 돈을 벌거나 많은 물건을 구하는 사람들은 네덜란드에 와야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역동적인 경제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라고 17세기 네덜란드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부는 사회안전망을 만들어주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마음껏 창의와 열정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면 된다. 경제 번영은 민간의 능력 있는 사람들이 일궈내는 것이다. 철학과 비전을 가진 정치 세력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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