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빠지게 일해도 가난...위킹푸어·렌트푸어·하우스푸어·학자금푸어, 이 중에 안 속하시는 분?
[아시아경제 부애리 기자] "한 달 월급에서 월세 내고, 관리비·통신요금 등 생활비 충당하면 매달 마이너스 신세다. 노후준비는커녕 로또가 당첨되지 않는 한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 사기도 힘들 것 같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하지만 웃을 수 없는 것이 진짜 현실이다"
한 중견기업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 이모(35)씨는 어느새 직장생활 7년차가 됐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월급을 받아도 수중에 돈이 없다고 푸념한다.
◆날로 진화하는 '푸어족' 유형=워킹푸어(직장이 있지만 벌이가 신통치 않아 일을 해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계층), 하우스푸어 (집은 있지만 집대출금 갚느라 빈곤한 상황)를 비롯해 요즘은 푸어족의 유형도 다양해졌다.
전연령층에서 '워킹푸어'가 가장 많았지만, 20대의 경우 학자금 대출로 인해 생활의 여유가 없는 '학자금푸어'가 32.1%, 30대는 비싼 전·월세 비용 때문에 생활이 여유롭지 못한 '렌트푸어'가 29.2%, 40대는 내 집 마련하느라 가난해진 '하우스푸어'가 41.8%, 50대 이상은 자녀 결혼비 마련 등으로 노후자금이 부족한 '실버푸어'가 34.4%로 각각 다음을 차지했다. 그래픽=이경희 디자이너
원본보기 아이콘광주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신모(30)씨는 전세 대출금을 갚느라 생활비가 늘 빠듯하다. 신씨는 전세 대출을 갚느라 생활비가 늘 빠듯하다. 신씨는 "2년 반 동안 남들 해외여행하고 맛있는 거 사먹을 때 안입고 안먹고 모았지만 전세자금은 부족했다"라며 "문제는 그 다음이다. 힘들게 전세자금을 모아도 집주인이 1000만원만 올리라고 하면 엄청난 부담이다"라고 토로했다.
이외에도 경제력이 부족해 아파도 병원에 못가는 '헬스푸어'(9.1%), 소득에 비해 비싼 차를 구입해서 쪼들리는 '카푸어'(6.2%), 과도한 결혼 비용으로 여유가 없는 '웨딩푸어'(6.2%), 자녀 교육비를 대느라 궁핍해진 '에듀푸어'(5.7%) 등이 있었다.
중소기업 사원인 김모(28)씨는 얼마 전 이가 시려 치과에 갔다가 비싼 치료비에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김씨는 "이가 3군데 썩은 곳을 치료하는 비용이 150만원이었다. 거의 한달 월급에 가까운 돈을 치과치료에 투자할 수가 없어서 다음달 추석보너스를 받으면 치료해야 한다"고 전했다.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시간'이나 주세요=경제적인 빈곤뿐만 아니라 삶의 질까지 가난해지고 있는 '타임푸어'족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잡지사에 일하는 박모(27)씨는 야근이 일상생활이 된 지 오래다. 입사 후 퇴근시간을 지킨 날은 손에 꼽는다. 박씨는 "회사에 12시간, 14시간씩 있다 보면 왜 사는 지 회의감이 들 정도다. 내 삶이 이 회사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세뇌당하는 기분이다"라며 "타임푸어는 단순히 '업무강도가 세다'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잃어가는 기분이 드는 것이 무서운 것 같다"고 생각을 밝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점심시간을 쪼개 수면카페에서 부족한 잠을 자는 직장인도 부쩍 늘었다. 수면카페는 시끌벅적한 일반카페와 달리 잠을 잘 수 있는 해먹이나 안마의자가 있다.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음악도 틀어준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힐링장소로 인기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일주일의 절반 정도인 주 2.3회 야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수면시간은 평균 6시간 4분으로 OECD 평균인 8시간 22분보다 1시간 이상 부족했다.
◆푸어족들의 종착역은 '포기'=문제는 이러한 푸어족들은 상황을 돌파할 힘이 없다는 점이다. 절반이 넘는 55.2%는 본인이 푸어족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707명을 대상으로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에 포기한 항목을 묻자 '취미·여가생활(55.4%)','저축(38.8%)'이 많았다. 이어 '인간관계(36.8%)', '결혼(33%)', '노후준비(31.2%)','내 집 마련(30.4%)' 등을 포기하고 있었고, 출산을 포기한다는 답변도 27.4%이나 됐다.
인터뷰에 응했던 직장인 신씨는 "결혼상대를 찾을 생각이 아직은 전혀 없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또 다른 지출의 시작이다"라며 "지금상황에서 연애를 시작하면 빚잔치가 될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돈을 모을 때까지 당분간 혼자 지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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