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올림픽 펜싱] 14-10, 내리 5점을 따냈다…기적의 아침을 맞이했다

금메달을 따낸 뒤 기뻐하는 박상영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한동우 인턴기자] 각본 없는 드라마? 그 이상의 짜릿한 대역전극이었다.

젊은 검객 박상영(21·한국체대)이 에페 종목에서 극적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10일(한국시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3에서 이번 올림픽 최고의 순간이 연출됐다.

박상영의 세계랭킹은 21위. 2014년 스위스 그랑프리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아직 기량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가 결승에 오른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결승 상대는 세계랭킹 3위에 빛나는 베테랑이자 유력한 우승후보인 게자 임레(42·헝가리). 8강 문턱에서 만난 이타릴아 가로초(2위) 등 어려운 상대들을 제압하고 진출한 결승이었기에 어쩌면 경기를 쉽게 풀어나갈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박상영보다 21살이나 많은 임레는 지금껏 만난 상대와는 격이 달랐다.

3세트 시작 점수는 13-9. 2점만 더 뺏기면 경기가 끝나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1점씩 주고받아 14-10이 됐을 땐 절망적이었다. 동시타라도 나오면 그대로 경기가 끝나는 상황. 에페 종목 규칙상 몸의 아무 곳이나 찔려도 점수를 내주게 된다. 1점도 뺏기지 않고 5점을 내리 따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 아닌가. 그 기적의 중심엔 ‘리듬 펜싱’의 달인으로 불리는 젊은 검객 박상영이 있었다.

1점을 따내고 서둘러 경기를 끝내려는 임레의 공격은 거침없었다. 금빛 메달을 눈앞에 두고 순간 흥분하며 방심한 것일까. 백전 노장이 그런 실수를? 그의 저돌적인 공격에도 박상영의 정신은 흔들리지 않고 신중하게 받아쳤다. 내리 4점을 따내 순식간에 14-14의 상황을 만들었다. 숨이 멎을 듯 장내는 흥분으로 가득찼다.

마지막 시원한 ‘금빛 찌르기’ 한 방으로 상황은 종료됐다. 꿈을 꾼 듯했다. 21살 풋나기가 42살 베테랑을 집어삼키는 한여름 밤의 꿈 말이다.

태극기를 들고 세리머니를 하는 박상영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펜싱 역사상 최초로 탄생한 에페 금메달리스트의 얼굴에는 흥분 어린 미소가 가득했다.

십자인대 파열로 1년간의 재활기간을 거친 박상영이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다. 아무도 그가 메달을 목에 걸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기에 기쁨은 더했다. 대한민국 펜싱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아침이었다.

한동우 인턴기자 corydong@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