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후기 관청지로 추정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신라시대 왕궁터인 경주 월성(月城, 사적 제16호, 면적 20만7528㎡)에서 흙으로 만든 벼루가 쏟아져 나왔다. 통일신라 후기 관청지로 추정되는 건물지에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경주 월성에 대한 정밀발굴조사 결과를 30일 이같이 발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1년 간 진행된 조사는 경주시 인왕동 석빙고 앞에 자리한 월성의 중앙지역 C지구(3만3000㎡)에서 주로 이뤄졌다.
이외에도 인화문(도장무늬) 토기, 국화형 연화문 수막새, '전인(典人)', '본(本)', '동궁(東宮)' 등의 명문이 새겨진 기와, 토기 유물들이 발견됐다. '전인'은 궁궐 부속관청인 와기전(기와ㆍ그릇 생산 담당)에 소속된 실무자, '본'은 신라 정치체제인 6부 중 하나인 '본피부', '동궁)'은 태자가 거처하는 궁궐을 뜻한다. 유물을 토대로 본 건물지군의 건축 시기는 8세기 중반 이후다.
그동안 C지구에서 확보된 유물분석에 따르면, 이곳에는 통일신라 문화층 두 개와 신라 문화층 다섯 개가 공존한다. 주로 4세기에서 9세기까지 왕궁 또는 관련 시설이 들어섰으며, 신라 멸망 이후 근대 이전까지 월성 내에 사람이 거의 거주하지 않았으리라는 분석이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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