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부산 횡령산서 "살려달라"는 여성의 비명이 들렸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 수십 명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 조사결과 비명을 지른 여성은 20대 후반으로 대학을 졸업하고도 수 년 동안 취업을 못해 절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황당하지만 웃어넘길 수 없는 해프닝이었다. 청년실업률 8.1%, 체감실업률 10.3% 계속되는 취업난이 청년들의 입에서 웃음을 사라지게 한 지 오래다.
실제로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취업준비생 46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취업준비생 10명 중 9명은 취업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울증의 주된 원인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계속되는 탈락',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는 게 힘들어서' 등이었다. 취업에 대한 압박감과 스트레스는 청년들의 정신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었다.
취업전쟁서 살아남은 청년들에게서도 웃음은 찾기 힘들다.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로 대표되는 청년들은 취업 후에도 웃으면서 즐길 시간도 여력도 없다. 한국 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상위권이다. 우리나라 임금 근로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평균 2057시간으로 OECD 26개국 중 3번째로 길다.
질 낮은 고용도 문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최근 비정규직 노동시장의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임금근로자 중 신규 채용된 15~29세 청년층의 비정규직 비중은 64%에 달했다.
스펙 경쟁 역시 계속된다. 입사 후에도 영어, 컴퓨터, 봉사, 중국어까지 공부하며 자기계발에 힘써야 한다. 장기 불황으로 2~30대도 명예퇴직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야"=청년들은 이러한 현실을 위로받을 곳도 제대로 없다. 기성세대들은 "우리 때는 말이야"라며 청년들의 노력 부족을 문제 삼는다. 하지만 청년들이 노력해서 스펙을 쌓아도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더 스펙 높은 자들과의 무한 경쟁이다.
청년들은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경쟁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조사에 따르면 취준생 808명 중 59.8%가 아르바이트 채용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웃음을 잃은 청년들은 이러한 현실을 냉소와 풍자로 풀어낸다.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한 김난도 교수의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야'라고 패러디됐다. 청년들은 '헬조선(지옥을 뜻하는 hell과 조선의 합성어)'이라며 한국의 현실을 비꼰다. 또 국회의원의 취업 청탁 뉴스를 보며 '수저계급론'을 만들기도 한다. 집 화장실에 욕조가 있는 지 없는 지로 '흙수저'를 가늠하고 노력을 '노오력'이라고 희화화하며 웃음 아닌 웃음을 짓는다.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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