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 배경

스무살 된 '날 보러와요'…"이젠 관객도 배우도 자유로울 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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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연극 '날 보러와요'가 처음 무대에 오른 1996년 2월 서울 문예회관 소극장. 객석에 앉은 형사 세 명이 감정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렸다. 그들에게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풀지 못한 숙제가 있었다. 연출가 김광림(64)은 이 사건을 소재로 '날 보러와요'를 만들었다. 수사팀과의 기나긴 면담, 치밀한 현장 답사, 신문 기사 더미가 재료였다. 그는 어딘가에서 이 사회를 조롱하고 있을 범인을 떠올리며 극 제목을 '날 보러와요'로 정했다.


태안지서 수사본부, 인권수사 김반장, 시인 지망생 김형사, 토박이 박형사, 무술 9단 조형사가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팀을 꾸린다. 정신이상자, 술주정뱅이, 성도착자 등 용의자 세 명을 취조하지만 범인은 없다. 형사들은 사건 해결에 대한 초조함과 강박으로 극한에 다다른다.

'날 보러와요'가 무대에 오른 지 스무 해를 맞았다. 김광림 연출과 초연 배우 권해효(51), 김뢰하(50), 류태호(53) 등이 10년 만에 돌아온다. 지난 6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김반장 역을 맡은 배우 손종학(49)과 김형사 역을 맡은 권해효를 만났다. 손종학은 2006년부터 김반장을 연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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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해효는 김광림 연출의 '다시 하자'는 제안에 "30대에 했던 걸 50대에 하란 말이에요?"하며 의아해 했다. 그러나 오랜만에 대본을 집어든 그는 "10년 만에 대본을 봤는데 깜짝 놀랐다. 같이 연습하던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단 한 순간도 '낡은 연극'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시대가 역행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웃음) 사회가 제대로 진보했다 하더라도 이 작품엔 시대를 관통하는 힘이 있다"고 덧붙였다.

손종학은 "실화가 주는 힘에 잘 만들어진 드라마가 어우러진 작품"이라며 "살아있는 캐릭터가 가장 큰 매력"이라고 했다. 권해효의 생각도 같았다. 그는 "한국 희곡 속 캐릭터는 매우 관념적이다. 정의로운 혹은 나쁜 인물이 그럴듯한 대사를 주고받는 데 그친다. 일본 소설에서처럼 보는 순간 그려지는 인물을 찾기는 어렵다. '날 보러와요'는 끝없는 인터뷰로 디테일한 인물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런 한국 희곡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했다.


스무 살이 된 '날 보러와요'는 조금 가벼워졌다. 위트와 인간애가 진하게 묻어난다. 작품이 바뀌지는 않았다. 희곡을 대하는 배우와 관객의 태도가 달라졌다. 권해효는 "초연 때는 시대적 무게가 있었다. 마지막 사건이 일어난 지 6년 밖에 되지 않았던 때, 여전히 '화성'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때 배우들은 소재의 무게에 눌려 이 작품에 담긴 인생의 희극적 측면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이제 첫 사건이 일어난 지 30년째다. 조금은 자유로워진 배우들이 작품의 바닥에 깔린 웃음의 정서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 같다. 받아들이는 관객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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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1980년대 농촌사회를 구체적으로 그린 영화 '살인의 추억'과 달리 시대를 어렴풋이만 드러낸다. 끝내 진실을 찾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데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배우들이 그 속에서 엿보이는 허무함과 사회 병리들을 설파하려 들지는 않는다. 손종학은 "주제의식을 드러내려다 보면 작품이 과장되고 무거워질 수 있다. 그 상황 자체를 최대한 즐겁게 해내려 한다"고 했다. "우리가 재밌게 놀면 관객이 재밌게 보고, 걸어가다 한 번쯤은 생각해볼 거다." 권해효 역시 "연극의 메시지는 배우가 아닌 관객이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연극은 관객에게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날 보러와요'도 그렇다. 손종학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호흡을 느낄 수 있어 재밌다. 영화보다 불친절할 순 있겠지만 연극의 담백한 그 맛은 관객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불붙일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권해효는 "이 작품을 통해 스스로 프레임을 짜는 능동성, 확장성 같은 연극적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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