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전쟁기념관에 따르면 호국인물로 선정된 김두찬((1919.3~2011.12) 해병 중장은 6ㆍ25전쟁 당시 서해 도서작전의 주역으로 평남 강동 출신이다.
정부는 그의 전공을 기리어 금성을지훈장과 금성충무훈장 등을 수여했으며 1956년 미국 정부로부터 동성훈장을 받았다.
이어 국가보훈처가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문창범(1870~1938) 선생은 러시아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지도자로 어려서 부모를 따라 러시아로 이주해 재력가로 자수성가하고 연해주 지역의 한인 교육과 언론 발전에 힘썼다.
그해 3월에는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2만여 명의 한인 동포들이 참가한 가운데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후 대규모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후 통합 임시정부 구성을 위해 노력한 끝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교통총장에 임명됐다. 선생은 1938년 러시아에서 순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6ㆍ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된 홍대선 해군하사는 6ㆍ25전쟁 당시 민간인 840명을 구출하는 작전에 투입됐다가 전사했다.
홍 하사는 1952년 1월 4일 LST-801(천안함 단정) 정장으로 서해 경비작전을 벌이던 중 피란길을 잃고 황해도 강령반도 앞 순위도에 모여든 민간인 840명을 안전하게 대피시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강령반도 일대는 북한군이 장악하고 있어 순위도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위험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홍 하사는 순위도에 도착해 피란민을 단정에 태워 쉴 새 없이 모함으로 후송했다.
피란민을 절반쯤 수송했을 때 북한군이 기관총과 박격포를 쏘며 순위도 상륙을 시도했다. 홍 하사는 피란민 수송을 다른 단정에 부탁하고 자신은 LST-801 단정을 타고 적의 포격과 총격을 유인하다가 북한군 전마선에 돌진해 3척을 박살냈다. 그러나 그의 단정도 뱃머리가 파손되어 더는 항진이 불가능하자 해안에 내려 일부러 자신을 노출하면서 적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했다. 적의 사격 방향을 유인해 피란민의 희생을 줄이도록 스스로 표적이 된 것이다. 결국 홍 하사는 흉부와 복부에 관통상을 입고 전사했다.
해군은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을 발휘한 홍 하사를 군인 정신의 귀감으로 기리고 있다. 2012년 진수한 최첨단 유도탄 고속함 중 한 척의 함명을 '홍대선함'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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