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작가까지…열정으로 발 넓혀간 그의 생애
주식·채권·옵션·헤지전략 등 끊임없이 신분야 개척
증권업에 몸담으면서도 강의 병행, 희곡·소설도 집필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벤자민 그레이엄은 증권업에 45년간 몸담으면서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주식과 채권, 풋옵션과 콜옵션, 국제증권, 청산, 차익거래, 헤지전략 등의 새로운 분야를 끊임없이 섭렵해 나갔다.
항상 호기심과 학구열에 불타 있던 그레이엄은 회사를 운영함과 동시에 1927~1954년까지 27년간 컬럼비아 대학에서 '고급 증권분석' 과정을 가르쳤다. 그 이후 15년동안은 UCLA 경영대학원에서 평교수로 재직했다. '베이비 퐁파두'라는 작품으로 브로드웨이 희곡작가로도 활동했으며, 우루과이 소설도 한편 번역했다.
저서와 기고 활동도 활발했다. 노년의 기억을 묶은 회고록 한권에 오늘날까지 투자자의 바이블로 꼽히는 '증권분석'과 '현명한 투자자'를 포함해 총 6권의 책을 출간했다. 매거진 오브 월스트리트와 베런즈, 이코노믹 포럼, 파이낸셜 애널리스트 저널 등 수많은 매체에 기고문을 게재했다.
그레이엄도 투자손실을 경험했다. 대공황 시기 회사 포트폴리오의 가치가 1929년 20%, 1930년 50%, 1931년 31%, 1932년엔 3% 줄었다. 같은 기간 다우지수는 각각 17.3%, 33.8%, 52.7%, 23.1%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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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을 만회하기 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1935년, 대공황기의 손실을 전액 만회한다. 투자 실패로 쌓은 소중한 경험을 흘려보내지 않고 분석하고 기록하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은 덕분이다. 그는 이때부터 1956년 월가를 떠날때까지 한번도 손실을 입지 않았다. 그레이엄이 1925년 제롬 뉴먼이라는 브로커와 함께 세운 '그레이엄 뉴먼'이라는 투자회사는 그레이엄이 은퇴한 1956년까지 31년간 연평균 17%라는 놀라운 수익률을 기록했다.
1976년 향년 82세의 나이로 그레이엄은 프랑스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월가는 그에게 '증권분석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헌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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