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그레이엄

벤자민 그레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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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주식투자 시작, 전쟁 계기로 시장 불확실성 탐구…보수적 투자로 대성공
투자자들이 가장 존경하는 월가의 롤모델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세계적에서 가장 존경받는 투자자 워렌 버핏은 항상 그의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의 85%는 벤자민 그레이엄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투자자 벤자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 버핏 처럼 현 시대의 투자 대가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가치투자'도 그의 손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그레이엄을 가치투자의 창시자로 부른다.


"시장은 주식을 너무 비싸게 몰고 가는 일시적인 낙관과 가격을 급락시키는 부적절한 비관 사이에서 흔들리는 시계추와 같다. 현명한 투자자는 비관주의자에게서 사서 낙관주의자에게 파는 현실주의자다." 저가 주식을 매수해 안전 마진을 확보하라는 그레이엄의 가르침은 아직도 투자자들에게는 바이블(성경)과도 같다.

그의 성공 뒤에는 불우한 유년시절이 있었다. 1894년 영국 런던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그레이엄은 1세 때 미국 뉴욕으로 이민했다. 아메리카 드림을 뽷은 이민자 1세대였다.


9세 때 아버지가 사망한 후 어머니의 주식투자 실패로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그레이엄은 전교 상위권을 유지할 정도로 학습 능력이 뛰어났지만 전산 오류로 원하던 컬럼비아대학 대신 뉴욕시립대(CCNY)에 입학해야했다. 결국 대학을 자퇴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컬럼비아대 총장의 도움으로 꿈을 이뤘다.


그레이엄은 1914년 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할 당시 철학과 수학, 영어과 등 3개 학과에서 교수 제의를 받았지만 거부했다. 대신 1915년 뉴욕증권거래소 회원사 중 하나인 뉴버거 헨더슨 앤드 로브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월가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월가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독일이 러시아에 각각 선전포고를 하며 전쟁의 회오리가 거세지면서 세계는 큰 혼란에 휩싸였다. 전쟁 여파로 미국 주식시장에서 투매가 이뤄지자 뉴욕증권거래소는 문을 닫는다. 하지만 며칠후 전쟁특수 루머가 돌자 다시 문을 연 주식시장은 연일 상승 랠리를 달린다.


여기서 그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확립한다. 그레이엄은 짧은 시간에 급변하는 주식시장의 변덕스러움을 목격하고, 이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세우며 본격적으로 '가치투자'에 매진한다. 그가 말하는 가치투자의 핵심은 간단하다. '기업의 가치가 시장에서 저평가됐을 때 주식을 사라'.


1915년 22세의 그레이엄은 여러 구리회사를 거느린 모회사 구겐하임이 저평가돼 있는 것을 발견한다. 당시 구겐하임은 주주들에게 자회사의 지분을 나눠주겠다고 공시했다. 구겐하임의 주가는 68.88달러 수준이었다. 그레이엄은 자회사의 주식가격을 근거로 구겐하임의 적정 가격을 계산한 결과 76.23달러로 평가한다.


그레이엄은 자신의 회사에 구겐하임의 주식을 매입할 것을 추천했고, 뉴버거는 구겐하임의 주식을 대량 매입해 큰 돈을 벌게 된다. 그레이엄의 연봉은 27세때 50만달러까지 뛰었다.


그레이엄은 원금보장을 가장 중요시 하는 보수적 투자자다. 그가 항상 되새기던 두가지 투자철칙은 '첫번째, 절대로 손해보지 말 것. 두번째, 첫번째 원칙을 절대 잊지 말 것'이다. 어머니의 주식투자 실패를 목격했고, 전쟁과 대공황 등 굵직한 이벤트를 몸소 겪은 원칙이다.


그렇다 보니 그레이엄이 기업 가치평가를 시작할 때 최우선의 기준으로 삼은 것도 '안전마진(safety margin)'이다. 기업이 청산하더라도 건질 수 있는 가치가 현 주가보다 싸다면 안전마진이 확보된 기업이다. 그레이엄은 "주가가 순자산가치의 3분의 2 미만에 거래되는 주식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그레이엄은 30세가 되서야 자신의 이름을 내건 회사를 설립한다. 1923년 미국 주식 시장이 대강세장에 진입한 것을 계기로 9년간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고 투자회사 '그레이엄 코퍼레이션'이라는 간판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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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로부터 독립한 후 그가 처음 거래한 종목은 듀폰과 제너럴모터스(GM)였다. 듀폰은 당시 GM 주식 상당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듀폰의 시가총액은 듀폰이 가진 GM의 시총 지분보다 더 낮았다. 듀폰은 GM주식 외에도 다른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고 사업가치도 충분했으므로 듀폰의 주가는 당연히 GM의 시총 지분보다 높아야 했지만,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듀폰의 주가는 절대적으로 싼 상태였다. 그야말로 안전마진이 극대화된 기업이었던 셈이다. 그레이엄은 듀폰 주식을 매수하고 GM 주식을 공매도했다. 곧 듀폰의 주가는 크게 올랐고 GM의 주가는 하락해 큰 평가차익을 남겼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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