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디클]'유감'과 '사과' 사이
[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 지난 한 주 온라인에서는 '유감'이라는 단어가 집중 조명을 받았다. 주요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위에 '유감'이 오르기도 했다. 이 단어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던 남과 북의 대치 국면을 해결하는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발표된 남북 공동보도문에는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라고 적시됐다. 정부는 사과의 의미로 북한의 유감 표명을 이끌어낸 것이 이번 남북협상의 중요한 성과라고 발표했다. "북측이 우리 대한민국 정부에 북한을 주어로 해서 사과, 유감 표명을 확실하게 한 첫 번째 사례"라고도 했다. 하지만 유감이 진정한 사과인가를 두고서 논란은 계속됐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유감(遺憾)의 사전적 의미는'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기 때문에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사과(謝過)와는 다르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다. 또 '지뢰 도발'이 아니라 '폭발'이란 표현을 썼기 때문에 북한이 자신들의 소행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온라인커뮤니티 등에서 '유감' 패러디가 계속 만들어져 눈길을 끌었다. 불만을 나타내고 항의할 때 사용한 '유감'을 놓고 그럼 이것도 사과를 한 것이냐고 되묻는 식이다. 예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북한 표준시 변경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것에 대해 "북한에 사과를 선언했다"고 비꼬았다. 17일 북한이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담긴 대북 메시지를 거친 언사로 맹비난한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 것을 두고 "북한이 대통령의 경축사를 비난한 것을 왜 정부가 사과?"라고 쓴 네티즌도 있었다.
지난 2002년 박희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연평해전에 대한 북한의 유감 표명을 노무현 정부가 사과로 받아들인 것을 빗대 "북한은 감을 내놓았는데 우리가 사과라고 하는 꼴이니 웃기는 일이다"고 했던 발언도 다시 주목을 받았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하면 로멘스'인 여권의 이중잣대에 대한 힐난이다. 한 네티즌은 유감 표명에 대해 북한은 "사과하지 않았다"고 하고 우리는 "사과를 받았다"고 해석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한편에서는 "유감은 외교적인 사과의 표현"이라며 "원래 북측이 넣기를 원하지 않았는데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이 사건에 대한 시인이자 사과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정부 입장을 옹호하는 이도 있었다. "공식적으로 사과를 못 받은 것으로 인정하면 계속 대치 상황을 유지해야 한다", "진정한 사과 받으려고 전쟁할거냐" 등의 주장도 제기됐다.
하지만 유감이라는 단어를 붙들고 자꾸 '유감'을 표명하는 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성과를 있는 그대로 알리지 않고 포장하는 정부와 이를 더 부풀려 남북 대치에 가슴 졸였던 국민들의 눈을 가리는 일부 언론들에 대한 유감 표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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