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 재의요구안(거부권 행사)을 상정해 통과시켰다. 앞으로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법제처가 재의요구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일만 남았다. 국회는 되돌아온 법률안을 재의결하거나 폐기할 수 있다. 국회법 개정안은 법률의 취지에 맞지 않는 정부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ㆍ변경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에 대한 국회의 견제 기능을 강화한 것이다.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지만 국회가 본회의를 열어 재의결하면 국회법 개정안은 원안대로 확정된다. 그러나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이 안건을 상정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정족수 미달 혹은 부결될 경우 법안은 폐기된다. 어떤 경우라도 박 대통령 혹은 여야 지도부에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의미한다.
그러나 새 국회법이 시행되더라도 국회가 정부의 시행령 제ㆍ개정에 제동을 걸기 위해선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 박 대통령이 내세우는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국정이 마비될 것"이란 걱정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와 국회가 시행령의 법률 취지 위배 여부를 놓고 의견을 달리 할 때 헌법재판소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맥락에서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집권 후반기 핵심과제를 본격 추진하려는 상황에서, 국회와의 관계를 확실하게 정립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정부의 손발을 묶는 법률을 앉아서 수용한다는 것은 국회 권력이 청와대를 압도했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일 수 있다. 레임덕의 시작을 자인하는 꼴이다.
이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도 의미하며 대통령과 엇박자를 내온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론이 거세지는 등 내홍이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유 대표의 사퇴는 친박계의 지도부 재장악 공간을 마련해준다. 반면 새누리당의 표결 참여와 재의결은 당청관계에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다. 박 대통령의 탈당도 점쳐진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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