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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반복 왜? 檢 청사 휘감는 '죽음의 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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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받는 유력인사 극단적 선택 반복되는 이유…두려움·분노·박탈감·미안함 교차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또 하나의 생명이 검찰 수사과정에서 목숨을 던졌다.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은 검찰 안팎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계로비 금품 제공 리스트가 담긴 ‘메모’가 발견되면서 정치권도 술렁이고 있다.

검찰 수사를 받다가 목숨을 던지는 행위는 의외로 드문 일이 아니다. 2004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검찰 수사를 받다 자살한 사람은 83명에 이른다. 특히 권력을 지녔거나 남부럽지 않을 재력을 확보한 이들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는 평범한 건물이다. 검사와 검찰수사관들이 근무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시내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건물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검찰 수사를 받고자 서울중앙지검을 찾는 이들은 그곳을 휘감는 ‘묘한 기류’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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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의 칼날이 자신은 물론 가족과 지인들을 옥죄고 있다는 ‘공포’다. 이는 검찰 내부 상황을 잘 아는 이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서울중앙지검 검사 출신도 피의자 신분으로 그곳을 찾았을 때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검찰 청사를 경험하게 된다. 처음으로 검찰에 출두할 때는 호기롭게 “진실만 말하면 되지 않겠나” “한 점 부끄러움 없으니 수사결과를 지켜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 전직 검사 역시 심적으로 크게 흔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관련 검찰 고위직 인사는 “일반인들은 검찰청에 출두해 수사를 받을 때 얼마나 큰 심적인 부담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처럼 검찰이 가혹행위를 하거나 고문을 해서 공포를 느끼는 게 아니다. 검찰도 수사 과정에서 인권준칙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행한 결과가 반복되는 이유는 검찰이라는 기관의 특성과 위축될 수밖에 없는 피의자들의 처지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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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통보를 할 때는 상당부문 수사 결과물이 축적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검찰 청사에 나와서 자신의 억울함 또는 진심을 보여주면 사태가 풀릴 것이라는 판단은 순진한 접근이다. 말을 잘한다고 혐의를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검찰 ‘포토라인’에 설 정도의 유력 인사들은 특히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누구 앞에서 머리를 조아려 본 경험이 거의 없는 이들은 한없이 위축돼 버린 스스로의 모습에 두려움과 당혹감, 분노가 교차하기 마련이다.

수사 담당 검사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민감하게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나이 어린 검사가 반말 비슷하게 얘기한다거나 예의 없이 행동하는 것을 볼 때 특히 그렇다. 검찰에서는 최대한 조심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수사는 수사다.

검사의 기본적인 역할은 죄가 의심되는 이들의 혐의를 입증하는 행위다. 혐의 입증을 위해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고, 그런 부분이 피의자들에게는 상당한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특히 자신이 고초를 겪는 것을 넘어서 배우자나 자녀, 부모 등으로 수사대상이 확대될 때는 심적으로 동요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위험한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피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면 검찰은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리며 사실상 사건을 종결한다. 자신만 목숨을 던지면 여러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가족들은 평생 치유하기 어려운 ‘트라우마’의 고통을 떠안게 된다.

북한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성완종 전 회장. 사진=아시아경제 DB

북한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성완종 전 회장. 사진=아시아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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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가족 등으로 수사를 확대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유용한 압박수단이 되기 때문에 수사기법상 그 부분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검찰이 과도한 수사로 무리수를 두는 경우도 있고, 그런 문제가 발단이 돼서 수사를 받던 대상이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검찰의 수사관행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은 자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수사상황 전반을 점검해보겠다는 약속을 빼놓지 않는다.

그럼에도 수사 과정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은 반복됐다. 말로는 개선을 약속했지만, 현실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모습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생명이 세상을 떠났고,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묻힐 가능성이 커졌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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