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 없는 정신병원 '국립공주병원' 탐방기

환자들 매일 숲길 산책하며 정신 재활

[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이쪽으로 올라가시면 두 갈래 길이 나옵니다. 왼쪽 길로 가시면 짧게 돌아볼 수 있어요"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달 30일. 국립공주병원내 '치유숲길' 산책로에서 한 중년 남성이 친절하게 길을 안내했다. 환자복을 입지 않았다면 이웃집 아저씨로 생각할 정도다. 기자가 빗물을 머금은 숲길을 돌아볼 지 머뭇거리자 "오래 걸리지 않는다"면 걷기를 권유했다.

국립공주병원은 중부권 정신건강 거점병원이다. 대전ㆍ충청권의 정신질환자들을 진료하고 치료하는 곳이다.

하루 평균 200명의 환자가 입원하고, 40명의 환자가 방문해 진료를 받는다. 치유숲길은 이들 환자를 치료하는 장소다. 10분 남짓한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자신에게 집중하다보면 신체활동으로 인한 기분전환은 물론 정신이 맑아져 정신질환자의 재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의료진의 설명이다.

산 속에 조성된 치유숲길은 다른 정신병원들과는 달리 철조망이 없다. 대신 간간히 탈출을 시도(?)하는 환자를 찾기 위해 곳곳에 CCTV가 설치됐다.

이 병원에는 정신분열증이라 불린던 '조현병'환자가 가장 많다. TV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남자 주인공인 조인성씨가 앓던 병이다. 환청이나 망상에 시달리는 질환이다. 지난해 퇴원환자 521명 가운데 조현병은 251명으로 절반에 달했다. 기분 변화가 급격한 양극성 장애(95명)와 알코올중독(61명)이 뒤를 이었고, 우울증 환자도 27명에 달했다.

하지만 '자유가 치료'라는 이영문 원장의 설명처럼 국립공주병원은 철장이 많지 않다. '미친 사람'을 강제로 입원시킨 무시무시한 병원일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환자들은 자유롭게 병원을 거닐고 원하는 재활치료에 참여했다. 강제적인 치료가 재활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 이 원장의 철학이다.

병원에 마련된 카페에선 환자들이 바리스타다. 퇴원을 앞둔 환자들이 커피를 직접 판매한다. 일종의 직업훈련인 셈이다. 이제정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는 "환자들의 경우 커피를 마시면 불면증 등 치료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커피 섭취를 제한하고 있다"면서 "손님 대부분이 병원 직원들"이라고 귀뜸했다.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한 환자들도 자유로워 보였다. 입원환자와 외래(방문)환자 10여명이 둘러앉아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기자를 힐끗 곁눈질할 뿐 돌발행동은 없었다.

보건복지부의 2011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18세 이상 성인 가운데 14.4%인 519만명이 평생 한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했다. 청소년들의 인터넷게임중독이 급증하고, 학교폭력에 의한 정신적 피해나 알코올중독, 우울증 등 갈수록 팍팍해진 사회에서 낙오되면서 각종 정실질환을 앓는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가운데 자살율이 가장 높다. 지난 2013년 기준 우리나라 자살율은 OECD 평균인 10만명당 12.1명 보다 2배 이상 높은 29.1명에 달한다.

이 원장은 "우리는 정신건강 문제에 소홀한 경향이 있지만 과로나 스트레스가 많을 때에는 휴식이 필요하다"면서 "'먹고살기 바쁜데 무슨 휴식인가'라고도 하지만 그럴수록 천천히 걷고 천천히 생각하는 생활습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