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탁영, 잊혀진 것들 9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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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 추상화의 거장 '정탁영 회고전'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최근 추상화 전시가 부쩍 많아졌다. 지난해부터 한국의 단색화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하면서, 이를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수묵 추상'을 대표하는 고(故) 정탁영 화백(1937~2012년)의 회고전이 열려 우리나라 추상화의 다채로움을 만날 수 있는 장을 더한다. 더욱이 정 화백은 회화 뿐 아니라 시작(詩作) 활동과 함께 작곡, 철재공예, 천 바느질 작업, 전각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전개해 온 다재다능한 예술가로, 이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함께 모였다.

서울 중구 정동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기증작가 특별전 정탁영'전은 작가가 남긴 1960~2000년대 작품들을 조망하는 회고전으로, 각 시대별·분야별로 대표작 140여점이 전시됐다. 그는 1960년대부터 50여 년간 수묵추상을 판화의 영역까지 확장해 독자적인 화법을 창출해낸 작가로 평가받는다. 작가는 1990년대 '잊혀진 것들' 시리즈와 2000년대 '영겁 속에서' 시리즈를 통해 수묵 판화의 번짐 기법과 투명함이 더해진 먹그림을 소화해 냈다. 2006년 심장병으로 큰 수술을 받은 이후 대규모 수묵화 제작이 불가능해진 그는 병고와 싸우면서도 한시, 작곡, 드로잉, 칼그림 등 여러 분야를 개척하며 창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두 차례의 추가 수술 후 2011년 드로잉과 칼 그림을 주제로 하는 마지막 개인전을 가졌고, 2012년 세상을 떠났다.


전시장에는 우선 작가의 소묘력을 보여주는 1950년대 인물스케치들과 2000년대 칼 그림 드로잉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칼 그림에는 두꺼운 마분지를 칼로 섬세하게 오려내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담아냈다. 프랑스 작가 앙리 마티즈의 오리기 기법을 응용한 듯한 느낌도 든다. 회화작품으로는 먼저 초기작인 1960년대 한국화가 모임인 묵림회와 국전의 출품작들이 보인다. 모든 회화적 요소를 비우고 캔버스를 뜯는 행위만을 남겼던 1971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출품작을 이후엔 일종의 판화형식을 취하며 소묘에서 보여주었던 뛰어난 묘사력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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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영, 칼 그림

정탁영, 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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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영, '촛대'

정탁영, '촛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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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의 공예 작품과 흙그림, 낙관류와 관련 자료들이 마련됐다. 명상과 요가, 서예를 즐기면서 세속적 삶을 멀리한 작가는 예술적 실험을 그치지 않았다. 촛대와 같은 철조작품과 지인들에게 작가가 자주 파 주던 낙관 도장과 직접 바느질한 색모시 작품, 인체 드로잉을 흙으로 그린 그림 등이 이를 증명한다. 특히 낙관 작품을 들여다보면, 그가 제자에게 보낸 흥미로운 편지글도 읽어볼 수 있다. "예술과 학문에 정진하라"는 따뜻한 조언과 함께 선물로 낙관을 보낸다고 적혔다.


정탁영 화백의 많은 어록에는 화가, 실험하는 예술가 그리고 제자들에게 귀감이 된 교육자로서의 면모들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리움을 그리는 것이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예술행위는 끝없는 욕망의 몸부림이며 자유와 해방을 갈구하는 상상력의 확대다". 오는 6월 28일까지. 02-2022-0600.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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