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이목구비가 또렷했다. 제1조(목적)부터 제2조(정의), 제3조(지원금의 차별 지급 금지), 제4조(지원금의 과다 지급 제한 및 공시), 제6조(지원금을 받지 아니한 이용자에 대한 혜택 제공)…제22조(과태료), 그리고 부칙<제12679>까지 법률로써 갖출 것은 다 갖췄다.
그럴 듯한 명분에 촘촘한 규제까지. 이 정도면 투명한 유통 질서 확립과 이동통신 산업 발전과 이용자 권익 보호라는 '일석삼조'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만개했다. 그러니 국회 통과 당시 재적 의원 215명 중 213명으로부터 축하를 받지 않았던가. 기권한 2명이야 처음부터 내가 탐탁지 않았다고 하니 섭섭하지 않다. 정말 섭섭한 것은 안면몰수하는 국회와 정부다.
국회는 법이 시행되자마자 제 구실을 하네, 마네 꾸짖더니 급기야 '찬성표를 던진 것을 후회한다'는 자기부정이 잇따랐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규제 법안을 만들어내더니 이제는 그 법에 장애가 있다며 여기저기 땜질을 하겠단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고향에서 쫓겨난 내 신세가 한없이 처량하면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심정이 심히 눈물겨운 것이다. 헌법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개정이니 뭐니 하는 소리에 한숨이 절로 터져나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아우성인데도 앓는 소리만 하는 제조사와 이통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딴 사람은 없고 잃은 사람 투성이인 화투판도 아니건만, 자신들이 더 큰 손해를 본다며 서로 눈을 흘긴다. 저러다 협력관계가 틀어질까봐 심히 걱정스러운 지경이다. 그보다는 소비자 편익에 초점을 맞춘 단말기와 서비스를 확대하는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야 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시장에서는 기업과 고객이 선수다. 정부와 국회는 심판이다. 경기가 재미 없다고 심판이 링에 오를 수는 없는 법이다. 흥행이 안된다고 규칙을 막무가내로 바꿔서도 안된다. '최소한의 규제가 최고의 정책'이라는 경제학의 오랜 원칙을, 규제의 출산물인 내가 강조하는 것이 난센스임을 잘 알지만 지금 이동통신 시장이 난센스 투성이다. 다만, 이왕 이렇게 태어난 몸이지만 지금의 혼란이 서둘러 정리되기를, 그리하여 유통 질서 확립과 이동통신 산업 발전과 이용자 권익 보호라는 '일석삼조'가 하루빨리 달성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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