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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명 칼럼]아르헨티나를 위해 울 것까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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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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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에비타'에 나오는 노래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여'의 여운 탓일 것이다. 아르헨티나가 불운한 일을 당할 때면 사람들이 이 노래를 떠올린다. 가사 속에서 에바 페론을 지칭하는 '나'는 다른 아르헨티나인이나 아르헨티나로 바뀐다.

지난달 13일 월드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가 독일에 졌을 때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도배한 메시지가 그랬다. 결정적 슛을 날리지 못한 아르헨티나팀의 간판 공격수 리오넬 메시를 겨냥해 "이미 돈을 많이 벌어서 그런지 플레이에 절박감이 없다"며 "그를 위해 울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로부터 열이레 뒤인 30일 아르헨티나 정부가 미국 헤지펀드와의 소송에서 최종 패소판결을 받았을 때도 그랬다.
미국 법원에서 진행된 그 소송에서 미국인 판사는 '원고인 헤지펀드들이 요구한 국채 원리금 상환을 하지 않는 한 아르헨티나 정부는 그 밖의 다른 채권자들에 대한 부채상환도 못한다'고 판결했다. 이로 인해 아르헨티나 정부가 그 다른 채권자들에게 기일이 된 채무를 이행하기 위해 미국 은행에 예치해 놓은 돈이 동결돼 인출되지 못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졌다. 지불여력이 있음에도 국가부도를 '당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한 법학교수는 '워싱턴포스트' 웹사이트에 '우리가 아르헨티나를 위해 울어야 하나?'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올렸다. 그 내용과 무관하게 제목은 아르헨티나의 디폴트 사태를 둘러싼 논란의 한 측면을 잘 부각시켰다. 미국 법원이 아르헨티나에 일방적으로 부당한 판결을 내린 것일까. 그래서 우리는 전적으로 아르헨티나를 동정해야 할까.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아르헨티나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미국 헤지펀드들이 아르헨티나 측의 규정대로 벌처펀드인 것은 맞다. 죽은 동물의 썩은 고기를 먹는 독수리(벌처)처럼 부도난 나라의 국채에 투자해 고수익을 노린다. 시장에서 그런 국채를 액면가에 훨씬 못 미치는 헐값에 사들인 뒤 그 나라에 이자까지 붙여 액면가로 상환할 것을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법정 소송을 벌이기도 하고, 필요하면 법적 절차를 밟아 그 나라 해외자산을 압류하기도 한다. 실제로 헤지펀드들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임대 전용기와 해외에 나가 있는 아르헨티나 군함까지 압류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가 '알 박고 뻗대기(홀드아웃)'하는 벌처펀드의 위협에 미리 현명하게 대비하지 못한 탓도 크다. 2001년 말 약 1000억달러 규모의 디폴트를 선언한 아르헨티나 정부는 2005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채권자들과 채무조정에 합의했다. 채무액 기준으로 93%의 채권자들로부터 원금 중 일부를 탕감받고, 남은 부채를 재조정된 일정에 따라 상환해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나머지 7%에 해당하는 채권자들이 이에 불응하고 액면가 상환을 고집하며 뻗대기에 들어갔다. 그중 일부가 시장에서 헐값에 미국 벌처펀드의 수중으로 들어간 것이다.

게다가 그 아르헨티나 국채는 미국에서 발행된 것이어서 권리의무 관계가 미국 법원의 관할에 속한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지난주 미국 정부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했지만, 미국 정부가 불응하면 그만이다.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어느 나라든 국내에서는 채무액 기준 90% 이상 절대다수 채권자들이 합의한 채무조정 계획이면 잔여 소수 채권자들에게도 구속력이 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이런 채무조정의 원칙이 통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문제는 미국에서 발행된 다른 나라 국채는 미국 법률의 우산 아래 알 박고 뻗대기하려는 미국 벌처펀드의 먹잇감이 된다는 것이다. 둘 다 현행 국제금융질서의 허점이자 그 기능 이상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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