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를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나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섬멸해야할 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와 함께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가 나를 적으로 생각하고 제거해야할 표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스스로의 삶에 결정적으로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광범위한 의미에서 내가 그에게 피해를 입혀온 존재라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악의는 하나의 태도이며, 적의 또한 그렇다. 악의는 일상 속에 존재하며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악의 없는 인간이 되기를 원하거나, 적의 없는 사람이 되고싶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어떤 순간에도 악의가 생겨나지 않고 어떤 상황에도 적의를 내보이지 않는 존재라면, 성자라 해야할 것이다.
악의와 적의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눈이 없는 상태이다. 나중에는 뉘우칠 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시선일 수밖에 없다. 페이스북에는 사람들이 넘치는 만큼 사람들의 마음도 흘러넘친다. 어떤 마음들 속에서는 악의와 적의가 들끓는다. 그런 것들을 대하고 나면 오랫동안 마음이 언짢다. 악의와 적의는 전염되거나 그 불쾌감을 유포시킨다. 세상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기를 원하는 피천득의 기도가 생각난다. 그런 무죄한 평화를, 비웃는 언어의 독침들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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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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