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축구는 고향을 특정하기 어려운 운동이다. 스위스 취리히대의 헬무트 브링커 교수는 2004년 국제축구연맹(FIFA)의 홈페이지에 실린 '축구의 발상지(The Cradle of Football)'라는 기사에서 축구의 발상지가 중국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공차기'는 진나라 시황제(기원전 246~210) 때부터 시작됐으며 한나라(기원전 206~기원후 220) 때는 팀과 규칙, 경기, 경기장 등이 갖춰졌다고 한다. 이집트와 남미에도 공차기 놀이의 흔적이 보인다. 우리의 <삼국유사>에는 김유신과 김춘추가 '축국(蹴鞠)'을 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축구를 문화로 이해하는 학자들은 16~17세기에 유행한 '헐링 앳 골(Hurling at Goal)'과 '헐링 오버 컨트리(Hurling over country)'에서 찾는다. 헐링 앳 골은 가까운 거리에 골을 설치하고 상대방의 골에 공을 들고 뛰어들어 점수를 내는 경기였다. 헐링 오버 컨트리는 먼 거리에 돌이나 나무 등으로 표시한 목표물을 향해 공을 들거나 차고 달리는 운동이었다. 헐링 앳 골과 헐링 오버 컨트리의 경기 공간은 마을과 마을 사이의 큰길이나 툭 트인 벌판이었다. 축구의 고향은 거리이고 광장이며, 대지(大地)인 셈이다. 대지가 낳은 축구는 영국의 각급 학교에서 성행하면서 벽 속에 갇혔고 근대화와 더불어 스타디움 안으로 사라져 갔다.
축구는 2002년 대한민국에서 광장을 되찾았다. 그해 6월의 뜨거웠던 광장과 거리 응원은 세계 축구팬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었다. 4년 뒤 독일월드컵 때에는 경기가 벌어지는 열두 도시가 모두 '팬 페스트(Fan Fest)'라는 축제를 열고 광장과 거리에 대형 스크린을 내걸었다. 웃통을 벗어 제친 축구팬들이 한 손에 맥주를 든 채 6월의 태양과 경기를 함께 즐겼다. 수많은 팬들이 경기장의 입장권을 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축구 자체를 즐기기 위해 광장에 모였다.
허진석 스포츠레저부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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