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주지 못해서…가슴 미어지는 팽목항의 어버이날
[진도(전남)=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유제훈 기자] #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통화라도 많이 할 걸. 넌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엄마가 숨이 끊어져도 넌 내 가슴 속에서 영원히 함께할 거야. 살아서 널 기다려서 미안해. 혼자 먼저 보내서 미안해"(진도 팽목항, 故 김동협 군 어머니)
# "저희가 무슨 자격으로, 뭘 잘했다고 카네이션을 받을 수 있겠어요. 아마 전국에 있는 부모들 마음은 매 한가지일 거에요"(안산 합동분향소, 참배객 한모씨)
세월호 참사로 300명이 넘는 학생ㆍ시민들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가운데 맞은 올해의 어버이날, 많은 어버이들은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차마 카네이션을 달 수 없었다. 예년처럼 아이들로부터 감사를 받는 대신 부모, 어른으로 사는 것이 부끄럽고 미안했던, '슬픈 어버이날'이었다.
8일 오전 팽목항 부둣가에는 자식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애끓는 마음을 써 내려간 부모의 편지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생전에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엄마, 마지막 인사라도 하게 해 줘 고맙다는 아빠의 글귀가 아이들에게 가 닿을 것처럼 진도 앞바다를 향해 펄럭이고 있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오후 안산 합동분향소. 매년 이맘때면 빨간 카네이션을 준비했을 어린 학생들의 영정사진 앞에는 순백색의 국화꽃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곳에선 '잘 길러줘서 고맙습니다'는 아이들의 말 대신 어른들의 '미안하다'는 말이 연신 흘러나왔다. 특히 숨진 단원고 학생 또래의 자녀를 뒀을 법한 중년 여성들이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참배를 위해 과천에서 왔다는 40대 여성은 "지금 대안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 아들이 제주도에 가 있어서 그런지 더 슬프고 눈물이 난다"면서 "내일이 어버이날인데 무슨 자격으로, 뭘 잘했다고 카네이션을 받을 수 있겠는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슬픔에 잠긴 안산시내에서는 좀처럼 카네이션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몇몇 가게는 어버이날을 앞두고 카네이션을 내놨지만, 이를 사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자녀 셋을 두고 있다는 택시기사 장인태(56)씨는 "(아이들을) 못 구한 게 아니라 안 구한거다. 카네이션이고 뭐고 왜 아이들이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게 했는지 그게 제일 미안하다"라며 착잡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인터넷, SNS에서도 어버이날에 빨간 카네이션 대신 노란 리본이나 다른 상징물을 달자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인천시민 차현숙(52ㆍ여)씨도 "우리 아이가 저렇게 됐다면 어떨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이 잘못된 것은 100%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다"라면서 "이번 어버이날엔 하얀 카네이션을 달아 (희생자들을) 추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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