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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방정맞다와 방정하다(30)

최종수정 2020.02.12 10:27 기사입력 2014.05.04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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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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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우리는 학교에서 나눠준 상장(賞狀)을 읽으며 웃었다. ‘위의 학생은 품행이 방정하고...’로 나가는 그 대목이 낯설고 얄궂었기 때문이다. 품행이 방정하고? 方正하고? 한자로 써놔도 알쏭달쏭한 이 말. 그래서 우리는 이 말을 흔히 쓰는 말인 ‘방정 맞고’로 바꿔놓고는 킬킬거리곤 했다. 왜 어른들은 ‘성품과 행동이 똑 바르고’라는 말을 쓰지 않고 이렇게 굳이 어려운 말을 찾아 썼을까. 그래야 상장의 권위가 생겨난다고 믿었을까. 이 문어투(文語套)의 칭찬법은 어린 마음 속에 식자(識者)들의 알량한 위선을 심어주는 작은 계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품행이 방정 맞고’의 꾸짖음과 ‘품행이 방정하고’의 칭찬을 가릴 줄 아는 계기가 오직 상장 속의 고식적인 표현법을 통해서였다는 건, 특기할 만하다.


그런데 상장 바깥에서 ‘방정하다’라는 형용사를 만나기는 무척 어려웠다. 왜 이 말은 쓰임새가 별로 없는 말이 되었을까. 대체 이 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어제 경복궁 담장 옆을 걸으면서 이 생각을 했다. 궁궐의 담장이 왕조시절에도 저랬을까? 저토록 우람하고 반듯한 까닭은 뭘까? 공간을 조성하는 방법이야 말로 권력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아닐까? 궁궐의 넓은 땅은 바로 권력의 상징이다. 그 넓은 땅을 평지로 조성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거기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평지를 닦는 일 또한 권력이다. 그 위에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는 일 또한 강제할 수 있는 힘이 크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그 건축물이 각이 서 있는 것에는 권력자의 계산이 숨어있다. 바르고 날이 서 있는 것이 주는 서슬퍼런 위압감을, 백성들에게 심어주려 했으리라. 건축물만 봐도 기가 죽는 효과를 노렸으리라. 권력은 무섭고 엄정하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도록 말이다.


‘方正하다’라는 말은 아마도 표준화의 기억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저 거대하고 방정한 건축물이 지상낙원의 모델이 되는 것처럼, 자연적인 무엇을 반듯하고 바르게 만드는 인위(人爲)의 확립이 인간에게 큰 자부심이었던 시절의 기억 말이다. 나는 저 표현이 글씨의 발전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진시황이 통일한 전서(篆書)와 그 이후에 등장하는 예서(隸書)의 감동이 ‘방정하다’라는 말 속에 숨어들었을 지도 모른다. 진시황 시대의 승상 이사(李 斯, 기원전 280-208년)는 거의 그림에 가깝던 고대 상형문자를 상당히 단순화하고 규칙화한 사람이다. 굵기가 균일한 획으로 사각의 틀 안에 맞춰넣는 표준문자를 만들어냈다. 이걸 전서 중에서도 소전(小篆)이라 하는데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문자 표준화 작업이었다. 물론 전서에는 아직도 상형(象形)의 기미가 많이 남아서, 후대에서는 이 글씨를 예술적인 표현으로 발전시켰다.

중국의 서예가 환골탈태하는 때는, 예서의 출현 이후다. 예서(隸書)라는 명칭은 당시 기준 서체였던 전서에 예속된 부차적인 서체라는 뜻에서 나왔다. 전서는 세로로 긴 장방형 속에 들어앉는 글씨였으나, 예서는 정사각형을 거쳐 가로로 긴 자형(字形)이 되었다. 또 붓을 쓰는 방법도 달라졌는데 전서는 속도와 굵기가 일정한 원필(圓筆)이었으나 예서는 변화가 있는 방필(方筆)이었다. 요컨대 예서는 각진 글씨이고 보다 개성이 표출되는 글씨였다. 예서는 중국 서예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해서(楷書)와 행서(行書)가 출현하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해서와 행서는 그야 말로 방정한 틀 안에 붓으로 쓸 수 있는 최고의 규칙성과 효율성을 갖춘 글씨이다. 문자의 수요가 많아지고 대중화되면서, 표준화가 더욱 진전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할 만하다.


다시 ‘방정하다’로 돌아가보자. 방정의 방(方)은 사각형이란 뜻이다. 사방(四方)의 모서리를 가리킨다. 각이 잘 잡혀있는 게 바로 방(方)이다. 방은 글씨가 들어앉는 네모로 된 모델하우스이다. 그 뒤에 있는 글자인, 정(正)은 무엇과 비교하는 것이다. 그 모델하우스와 비교하여 어떤가를 따지는 것이다. 모델하우스와 일치할 때 정(正)이며, 아닐 때는 부정(不正)이다. 품행이란 사람의 성품과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품행은 저 반듯한 글씨에 비유될 수 있다. 성품은 문자의 기틀이다. 문자는 그것이 씌어지는 어떤 원칙적인 틀을 가지고 있다. 각 서체마다 틀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쓰는 사람마다 개성적인 틀을 갖고 있기도 하다. 글씨도 그 성품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행동은 그 정해진 틀을 지키는 지의 여부로 파악된다. 품성이 방정한 것은 틀이 반듯한 사각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며, 행동이 방정하다는 것은 그 반듯한 사각 안에 알맞게 잘 씌어진 글씨처럼 벗어남이 없다는 뜻이다. 요컨대 문화(文化)의 진전에 따른 표준화의 규칙들을 잘 준수하고 있다는 점이 방정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방정하다’라는 말은, 이 땅에서 이뤄지는 교육의 목표를 암시한다. 표준화는 달리 말하면 획일화이기도 하다. 오와 열을 맞추는 좌우정렬의 기억들과 함께 ‘방정한 인간’이 되기를 독려하는 교육은, 자유와 개성과 창의와 일탈을 말리거나 부정하는 역기능을 지닌 것도 사실이다. 품행이 방정한 ‘범생이’만을 낳고 싶어하는 사회는 상대적으로 건전하고 안전한 세상이 되는데에는 도움이 될 지 모르나, 인간의 창의적 에너지와 역동적인 욕망들을 억압하는 ‘기획’에 매력을 느끼는 사회일 수도 있다. 오히려 '방정 맞은‘ 인간들이 속속 출현하여 세상을 뒤집고 흔드는 그 사회가 훨씬 더 건강한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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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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