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는 학교에서 나눠준 상장(賞狀)을 읽으며 웃었다. ‘위의 학생은 품행이 방정하고...’로 나가는 그 대목이 낯설고 얄궂었기 때문이다. 품행이 방정하고? 方正하고? 한자로 써놔도 알쏭달쏭한 이 말. 그래서 우리는 이 말을 흔히 쓰는 말인 ‘방정 맞고’로 바꿔놓고는 킬킬거리곤 했다. 왜 어른들은 ‘성품과 행동이 똑 바르고’라는 말을 쓰지 않고 이렇게 굳이 어려운 말을 찾아 썼을까. 그래야 상장의 권위가 생겨난다고 믿었을까. 이 문어투(文語套)의 칭찬법은 어린 마음 속에 식자(識者)들의 알량한 위선을 심어주는 작은 계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품행이 방정 맞고’의 꾸짖음과 ‘품행이 방정하고’의 칭찬을 가릴 줄 아는 계기가 오직 상장 속의 고식적인 표현법을 통해서였다는 건, 특기할 만하다.
그런데 상장 바깥에서 ‘방정하다’라는 형용사를 만나기는 무척 어려웠다. 왜 이 말은 쓰임새가 별로 없는 말이 되었을까. 대체 이 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어제 경복궁 담장 옆을 걸으면서 이 생각을 했다. 궁궐의 담장이 왕조시절에도 저랬을까? 저토록 우람하고 반듯한 까닭은 뭘까? 공간을 조성하는 방법이야 말로 권력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아닐까? 궁궐의 넓은 땅은 바로 권력의 상징이다. 그 넓은 땅을 평지로 조성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거기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평지를 닦는 일 또한 권력이다. 그 위에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는 일 또한 강제할 수 있는 힘이 크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그 건축물이 각이 서 있는 것에는 권력자의 계산이 숨어있다. 바르고 날이 서 있는 것이 주는 서슬퍼런 위압감을, 백성들에게 심어주려 했으리라. 건축물만 봐도 기가 죽는 효과를 노렸으리라. 권력은 무섭고 엄정하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도록 말이다.
‘方正하다’라는 말은 아마도 표준화의 기억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저 거대하고 방정한 건축물이 지상낙원의 모델이 되는 것처럼, 자연적인 무엇을 반듯하고 바르게 만드는 인위(人爲)의 확립이 인간에게 큰 자부심이었던 시절의 기억 말이다. 나는 저 표현이 글씨의 발전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진시황이 통일한 전서(篆書)와 그 이후에 등장하는 예서(隸書)의 감동이 ‘방정하다’라는 말 속에 숨어들었을 지도 모른다. 진시황 시대의 승상 이사(李 斯, 기원전 280-208년)는 거의 그림에 가깝던 고대 상형문자를 상당히 단순화하고 규칙화한 사람이다. 굵기가 균일한 획으로 사각의 틀 안에 맞춰넣는 표준문자를 만들어냈다. 이걸 전서 중에서도 소전(小篆)이라 하는데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문자 표준화 작업이었다. 물론 전서에는 아직도 상형(象形)의 기미가 많이 남아서, 후대에서는 이 글씨를 예술적인 표현으로 발전시켰다.
중국의 서예가 환골탈태하는 때는, 예서의 출현 이후다. 예서(隸書)라는 명칭은 당시 기준 서체였던 전서에 예속된 부차적인 서체라는 뜻에서 나왔다. 전서는 세로로 긴 장방형 속에 들어앉는 글씨였으나, 예서는 정사각형을 거쳐 가로로 긴 자형(字形)이 되었다. 또 붓을 쓰는 방법도 달라졌는데 전서는 속도와 굵기가 일정한 원필(圓筆)이었으나 예서는 변화가 있는 방필(方筆)이었다. 요컨대 예서는 각진 글씨이고 보다 개성이 표출되는 글씨였다. 예서는 중국 서예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해서(楷書)와 행서(行書)가 출현하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해서와 행서는 그야 말로 방정한 틀 안에 붓으로 쓸 수 있는 최고의 규칙성과 효율성을 갖춘 글씨이다. 문자의 수요가 많아지고 대중화되면서, 표준화가 더욱 진전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할 만하다.
다시 ‘방정하다’로 돌아가보자. 방정의 방(方)은 사각형이란 뜻이다. 사방(四方)의 모서리를 가리킨다. 각이 잘 잡혀있는 게 바로 방(方)이다. 방은 글씨가 들어앉는 네모로 된 모델하우스이다. 그 뒤에 있는 글자인, 정(正)은 무엇과 비교하는 것이다. 그 모델하우스와 비교하여 어떤가를 따지는 것이다. 모델하우스와 일치할 때 정(正)이며, 아닐 때는 부정(不正)이다. 품행이란 사람의 성품과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품행은 저 반듯한 글씨에 비유될 수 있다. 성품은 문자의 기틀이다. 문자는 그것이 씌어지는 어떤 원칙적인 틀을 가지고 있다. 각 서체마다 틀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쓰는 사람마다 개성적인 틀을 갖고 있기도 하다. 글씨도 그 성품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행동은 그 정해진 틀을 지키는 지의 여부로 파악된다. 품성이 방정한 것은 틀이 반듯한 사각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며, 행동이 방정하다는 것은 그 반듯한 사각 안에 알맞게 잘 씌어진 글씨처럼 벗어남이 없다는 뜻이다. 요컨대 문화(文化)의 진전에 따른 표준화의 규칙들을 잘 준수하고 있다는 점이 방정하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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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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