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 잡는 '특성화'?…원광대 서예과 폐지 논란
학교 당국 "2년 연속 정원 미달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조치"
학생·교수 "특성화로 취업률·전망도 좋은데 납득하기 어려워"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최동현 기자]
교육부가 지역 대학 특성화사업·대학 구조개편 사업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며 구조조정 드라이브를 밟는 가운데, 전국 곳곳에서 특성화로 인해 '특성화' 학과들이 존폐 위기에 처한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원광대학교 측은 지난 10일 계속해서 정원 미달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서예문화예술학과(이하 서예과)를 폐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2012년 이후 정원이 계속 미달되는 한편 전과로 인해 학과 충원률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폐과'라는 초강수를 들이댄 것이다.
문제는 정작 폐과대상인 서예과가 2007년엔 원광대에서 '특성화지원학과'로 선정된 적이 있었다는 점이다. 원광대 측에서도 서예과의 경쟁력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특성화지원학과 지정 이후 서예과는 교육과정을 캘리그래피·전통문화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전면 개편했다.
'캘리그래피'는 애플 CEO 스티브 잡스가 "대학에서 유일하게 건진 것"으로 평가한 예술분야다. 그만큼 최근에는 캘리그래피를 배우고자 하는 수요도 크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예과 역시 커리큘럼 개편 이후 2011년 졸업자 취업률 100%라는 업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졸업자들이 '캘리그래피'의 장점을 살려 유명 폰트 제작회사의 디자이너로 일하거나 코엑스 같은 컨벤션센터에 취직해왔다.
폐과 당사자인 학생들도 불만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0일 폐과가 통보된 이후 학생들은 14일 학교에서 항의 집회를 열었다. 구청미 서예문화예술학과 학생회장은 "우리 학과는 세계 최초의 서예 전문학과"라면서 "그러나 학교는 아무런 사전 설명 없이 10일 폐과를 받아들이라는 식으로 통보했다. 갓 입학한 신입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원광대 당국 측은 '정원 미달' 때문에 폐과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원광대 관계자는 "서예과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입학정원이 부족해 두 번의 경고를 받았기 때문에 폐과를 결정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성화지원학과 지정 후 지원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선 학교-학생 측 주장이 엇갈렸다. 여태명 서예문화예술학과 교수는 "서예과는 특성화지원학과로 선정 된 이후 '캘리그래피'에 집중하면서 성과를 내 미술 대학 내에선 취업률이 상위권이고 학교에 재정적으로 기여한 바도 많다"면서 "그러나 이런 성과대신 불과 2~3 년간의 충원률만 보고 폐과를 결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원광대 관계자는 "학교 측이 특성화지원학과를 지정한 것이 아니라 당시 학부 아래 전공으로 존재했던 서예과가 자체적으로 이를 표방한 것"이라며 "학교 차원에서는 어떠한 지원도 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원광대 측은 2007년 특성화지원학과로 지정될 정도로 상승세를 타던 서예과가 왜 정원이 모자랄 정도로 존폐의 위기에 놓이게 됐는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교육업계 전문가들은 원광대의 이러한 결정이 현재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방대학 특성화사업'에서 시작된 필연적인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요구하는 강도 높은 대학 구조조정 작업이 대학들로 하여금 학생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은 채 '무리한 수'를 두게끔 강요했다는 설명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방대학특성화사업에 투입되는 돈은 향후 5년간 1조원 규모다. 그런데 이 사업은 대학의 구조조정 규모에 따라 가산점을 최대 5점까지 부여한다. 이 때문에 재정압박을 받고 있는 대학들이 정부로부터 되도록 많은 돈을 얻기 위해 폐과 등과 같은 무리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원광대 서예과의 폐과 결정도 이러한 배경 하에 결정됐다는 것이 교육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박정원 상지대학교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지역대학특성화사업은 대학들이 정원을 줄여야 몇 점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각 대학들은 경쟁적으로 인원을 감축하는데 나서고 있다"라면서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어떤 학문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 없이 단기적으로 바뀔 수 있는 지표만으로 감축을 결정하다보니 전북지역 특성과 맞물려 있는 서예과 등이 폐과 대상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대학 구조조정의 물결은 전국에서 일고 있다. 이미 폐과 방침을 밝힌 서일대 문예창작학과·원광대 서예과 등이 갈등을 겪고 있는 가운데 14일 하루에만 교원대·서원대·청주대 등 지역대학들이 정원감축안을 발표하면서 학내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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