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해커 영입' 딜레마
보안 강화 위한 전문가 영입
내부보안 '시한폭탄' 우려도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2011년 농협 전산망 마비와 지난해 3·20 사이버 공격 등 금융 보안 사고가 끊이지 않자 일부 은행들이 화이트해커(보안전문가로 활동하는 선의의 해커) 영입에 나서고 있다. '해커는 해커로 막는다'는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다. 다만, 화이트해커들이 '딴마음'을 먹을 경우 대형 금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채용을 놓고 은행들마다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24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내부 보안 강화를 위해 얼마 전 화이트해커 출신 보안 전문가를 채용했다. 국민은행 고위 관계자는 "해커들의 해킹 방식은 누구보다 해커 자신들이 잘 알지 않겠냐"며 "화이트해커 출신 직원이 내부 전산망의 취약점을 발견하면 관련 부서가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한다"고 설명했다.
기업은행도 2년 전 과거 해킹 대회에서 입상 전력이 있는 화이트해커 출신 보안 전문가를 영입했다. 이 은행 관계자는 "은행에 보안 시스템을 들여올 때 미리 테스트를 하거나 이미 완비된 시스템도 가상으로 해킹을 시도해 안정성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이트해커를 활용하면 내부의 약점을 찾는 것은 물론 해커의 공격 방식도 파악할 수 있어 효과적인 방어가 가능하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다만 은행들이 화이트해커를 채용할 때 적지 않은 고민도 안고 있다. 보안 강화를 위해 전문가를 영입하는 것이지만 자칫 이들이 '딴마음'을 먹기라도 하면 대형 보안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시중은행의 한 최고정보책임자(CIO)는 "외부에서 영입하는 보안 전문가들은 채용 전 다양한 적성 검사 등 철저한 면접을 거치게 된다"면서도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이유 등으로 최근 한 대형은행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화이트해커 출신 보안 전문가의 영입을 추진했지만 끝내 포기했다. 이 은행 관계자는 "화이트해커 출신 전문가를 채용하기 위해 면접을 진행했지만 은행 내부적으로 반대의 의견이 많아 채용하지 않았다"며 "자유분방한 그들과 정형화된 은행 내부 분위기가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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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은행들이 최고 수준의 화이트해커를 영입해 놓고도 이 같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측면도 있다. 자칫 해커들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은행의 CIO는 "화이트해커 영입 사실이 알려질 경우 해커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타깃으로 삼고 무차별 공격을 시도해 은행의 네트워크나 최신 프로그램을 망가뜨릴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몇몇 은행들은 화이트해커를 직접 고용하기보다는 보안업체와 연계해 주기적으로 모의 해킹을 진행하면서 보안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해킹 등으로 보안 사고가 발생하면 당장 금융 서비스가 중단되는 것은 물론 회사의 신뢰도가 크게 손상된다"며 "은행 입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부 보안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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