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농담이 다양하게 변형되다가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버전이 생겨났다. "그린스펀 같은 중앙은행 총재라면 몇 사람이 필요할까?"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그가 백열전구를 붙들고 서있으면 온 세상이 그를 중심으로 해서 돌 테니까." 1987년 8월부터 2006년 1월까지 무려 18년5개월 동안 연준 의장으로 재직하면서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한 그의 위상에 대한 풍자다. 이 그린스펀 버전을 약간 비틀어 적용하면 한은 버전도 만들 수 있겠다.
한은은 매달 금통위 회의가 열리는 날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중기 물가안정목표는 말 그대로 중기적 시계(視界)에서 달성하려는 목표이지 꼭 그대로 하겠다는 게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갭이 당분간 마이너스 상태를 유지하겠지만 그 폭이 점점 축소될 것이며 기대물가도 높으니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이다." 마치 중기 물가안정목표와 기준금리를 백열전구처럼 붙들고 서서 경제 전체가 돌아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상식적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일반인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지키지도 않을 중기 물가안정목표라는 것은 왜 설정해 발표하나?" "그러려면 물가의 상한만 설정하지 왜 하한까지 설정하나?" "이래서야 한은이 앞으로 새로운 중기 물가안정목표를 발표한들 누가 믿을까?" 한은은 이런 의문들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기대물가'니 '중기적 시계'니 하는 말은 나름대로 이론적 근거가 있더라도 다수 국민에게는 꿰어맞추기를 위한 변명으로 들린다.
'불통총재'로 불리던 김중수 한은 총재의 임기가 이달 말 끝난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임에 정통 한은맨 이주열 전 부총재를 지명했다. 의외의 변수가 돌출하지 않는 한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것 같다. 총재 교체를 계기로 한은이 중기 물가안정목표제 존폐 여부를 재검토하고, 존치한다면 그 운용방식을 어떻게 개선할지를 고민했으면 한다. 이것이 우선 신뢰를 받게 돼야 한은
의 소통력이 강화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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