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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없다…'고심촌' 된 고시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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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공동화’…대책 위한 ‘지식문화마을’ 사업은 예산 때문에 제자리걸음

[아시아경제 박나영 기자]
▲사법고시생들이 대거 빠져나간 신림동 고시촌 골목길

▲사법고시생들이 대거 빠져나간 신림동 고시촌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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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 나서 나간 사람들 많지"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 이곳에서 30년째 공인중개사를 운영해온 유문갑씨(67)는 "1990년대만 해도 추석 지나면 방이 없어서 못 들어갔다"며 동네가 고시생들로 가장 북적였을 당시를 회상했다. 12일 찾은 고시촌은 조용했다. 고시촌의 상징으로 꼽혔던 '광장서적'도 지난해 부도가 났고 그 많던 고시식당들도 하나둘 사라졌다. 유씨는 "로스쿨 제도가 시행되면서 다 빠져나가고 지금은 건물마다 3분의 1은 공실"이라며 "임대료도 20~30% 떨어졌다"고 말했다. 사법고시생이었다가 이곳에서 고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남율씨(46)는 "고시생일 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한 끼에 700인분씩 준비했었다"며 "지금은 300인분에 그치고 그나마도 공무원 준비생들로 채워진다"고 말했다.

전성기에는 3만명의 고시생들이 생활하던 마을이었으나 2009년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이후 사법고시 준비생들이 절반가량으로 크게 감소했다. '고시생'만을 위해 기능하던 마을이었으니 '고시생'이 사라짐과 동시에 급속한 '공동화ㆍ사막화' 현상을 겪게 된 것이다. 관악구청의 의뢰로 '고시촌 재생 프로젝트'를 구상 중인 임진철 청미래재단 대표는 "고시생에 신림동 주민, 서울대 학생, 유동인원까지 더하면 4만명에 이르던 마을에 갑자기 절반 가까운 숫자가 빠져나가니 동네가 위기를 맞게 됐다"며 "방값이 저렴해지면서 모여드는 사람들은 일용직 건설노동자, 이주노동자,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산꼭대기가 이주노동자와 건설노동자들의 주거지가 되면서 자연히 은밀한 거래가 늘고 있다"며 "동네사람들은 이런 얘길 하면 집값 떨어진다고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도 고시생들 때문에 수요는 있었겠지만 외부인 유입으로 더 심해졌다. 여성들이 원룸을 구해 살며 휴대폰이나 인터넷으로 연락을 받고 또다른 원룸을 찾아가는 식이니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다"며 동네가 퇴폐화되는 데 대한 우려를 표했다. 공인중개사 유씨는 "예전에는 고시생들이 고시를 포기하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계속 이 동네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 이곳에서 집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르바이트생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학생들이 비운 자리 학생들이 메워야 동네가 살 수 있다"며 공무원학원 유치를 해결책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고시촌의 공동화 현상을 막기 위해 관악구청이 나섰지만 문제는 예산이다. '고시촌 재생프로젝트'를 구상중인 청미래재단 연구팀은 고시촌이 '몰입과 집중'의 마을임에 착안해 '지식문화마을'로 만드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존에 '공부'에 몰입·집중하던 고시생들이 비운 자리를 '작품'에 몰입·집중하는 예술가·작가·씽크탱커로 채우겠다는 발상이다. 임 대표는 "세계 어딜 가도 '고시촌'이라는 마을은 없다"며 "고시촌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큰 소리를 안 내는 마을의 문화를 살려나가야 한다"고 했다.

'지식문화마을'의 일환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이 '작가클럽하우스'다. 관악구청은 지난해 9월 공연, 미술 등의 퍼포먼스 중심의 문화예술 부분을 제외한 작가나 감독, 프로듀서, 출판업자 등 스토리텔링 산업종사자 7명에게 작업공간을 마련해줬다. 약정한 기간 내의 작품 생산 능력을 보고 입주를 연장하는 식이다. 임 대표는 "예전에는 불도저로 한번에 밀어붙이는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창의적인 미니모델을 만들어 정착시키면 이것이 확산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서도 "구상 중인 협동조합, 예술창작소, 북카페 등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건물 임대비용도 만만치 않아 예산확보가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박나영 기자 bohen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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