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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협의, 여당과 정부의 짬짜미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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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협의를 말한다]① 당정협의란 무엇인가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일반 병사들의 봉급을 얼마나 올릴지', '내년도 예산 편성 방향은 어떤 방향으로 할 것인지', '어린이날을 대체휴일에 포함시킬지', '미래부와 해수부를 세종시에 옮길 것인지', '전월세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전력난 문제 및 원자력 안전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고교 무상교육을 언제 시작할 것인지', '일본 방사선오염 해수산물 수입은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등등.

위에서 거론된 문제들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 결정사항들이다. 하지만 이 사안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더 있다. 당정협의를 통해서 정책방향이 최근 결정된 사안들이라는 점이다. 당정협의는 정부 각 부처 장관들과 여당인 새누리당의 일부 의원들이 만나 정책, 법안 및 현안에 대해 협의를 하는 자리를 말한다. 이 자리를 마친 뒤 협의 내용이 발표되면, 이는 곧바로 정부의 정책방향이 되다보니 당정협의에 이목이 쏠린다. 이 때문에 '당정, XXX 도입 협의' '당정, *** 대책 시행 합의'의 제목을 단 기사는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루곤 한다.
공직자의 성범죄 예방교육 강화 방안을 골자로 한 이른바 ‘윤창중 방지안'에서부터 세법개정안에 이르기까지 당정협의는 폭넓은 분야에 대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바야흐로 당정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정협의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른 채, 정부와 여당이 만나 정책을 협의하는 것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당정협의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떠한 제도적 근거를 갖고 있는지, 또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살펴보겠다.

◆당정협의의 유래는 = 정부의 주요 정책 방향이 결정되는 당정협의는 국무총리 훈령 506호인 ‘당정협의업무 운영규정'에 근거하고 있다. 이 규정은 각 부처장 및 위원회의 장은 법률안과 대통령령안, 국민생활 또는 국가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총리령, 부령 및 정책안, 기타 주요 현안문제에 관해 여당과 긴밀히 협조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총리훈령에 불과할 뿐 법적인 근거를 갖추지는 못했다. 한 헌법학자는 "총리 훈령은 국회가 만든 법률이 아니라 행정부의 내부규칙일 뿐"이라고 말했다. 주요 정책 협의 기구가 법적 근거조차 갖추지 않은 채 총리훈령에 근거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당정협의는 1965년 4월8일 박정희 대통령의 '정당과 정부 간의 유기적인 협조 개선 방침에 관한 지시각서'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졌다. 김종필 민주공화당 의장이 당정 간의 원활한 정책 협조를 위한 제도의 필요성을 건의했고, 박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당시 집권당인 민주공화당으로서는 당정협의를 통해 정부 정책결정과정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한 반면, 행정부에서는 법안 및 정책에 있어서 여당의 원만한 지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당시에는 당정협의에 대한 특별한 근거 규정 없이 대통령의 지시각서가 제도적 기반이 됐다. 이후 4공화국 들어서면서 당정협의는 '당정협조에 관한 처리지침'이라는 총리훈령을 근거로 갖추게 된다.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훈령이름 내용이 바뀌었지만 당정협의의 제도적 기반은 총리훈령이라는 점은 변함없이 유지되어 왔다.
정광모 전 보좌관은 '인물과 사상' 기고문을 통해 "한국의 당정협의 양 주체는 내각과 집권당이지 대통령과 집권당이 아니다"며 "이 두 집단은 대통령을 정점으로 단일한 집권세력으로 통합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관점에서 정부와 여당이 만나, 정책협의에 나섬으로써 원활한 국정운영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견제와 균형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와 입헌주의의 작동원리인 3권분립의 원칙을 효율성을 이유로 건너뛰겠다는 것으로 볼 수 대목이다. 국가권력을 입법·행정·사법으로 나누고 상호간에 견제와 균형을 원리로 하는 3권분립 제도를 민주주의의 작동원리를 도입한 데에는 국가권력의 능률향상 보다는 국가권력의 집중과 전횡을 막기 위한 고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주요 권력기관 두 곳이 협의라는 명목으로 정책 방향을 확정지을 경우에는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당정협의를 통해 정책방향이 결정되면, 야당과 여론의 비판 외에는 정책방향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여당 내부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개선점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당정협의가 3권분립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의원들의 의견 개진만으로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해 견제와 균형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당정을 통해 협의안이 나올 경우에는 여당은 이에 대해 반대하기가 쉽지 않은 입장에 놓이게 된다. "합의해 놓고 딴말을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통령의 의중이 어디로 향하는지가 당정협의의 주요한 방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회의 견제 균형의 원칙은 당정협의를 통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당정협의는 어떻게 진행되나 = 당정협의는 주로 아침 7시30분 국회 귀빈회관에서 조찬을 겸하는 자리로 진행된다. 사안에 따라 아침 시간 이외에도 개최되며, 장소는 여당 정책위의장실, 당대표실, 의원회관 등 참석자와 사안의 중요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총리와 당대표 간의 고위당정협의를 제외하면 참석자는 일반적으로는 여당 정책위의장 또는 정책조정위원장과 해당 상임위 여당 의원들 정부의 관계 부처의 수장 및 고위책임자들로 구성된다.

당정협의 일정은 기자나 일반에 특별하게 알리는 절차 없이 정부 또는 여당의 협의에 의해 일정이 정해진다. 당정협의가 시작되면 정부의 간단한 인사말이 오간 뒤 정부의 현안보고가 있고, 의원들의 질문 또는 지적이 이어지는 순서로 진행된다. 공개된 당정협의를 지켜보면 정부 측 대표들이 "여당 의원들에게 현안에 대해 보고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기쁘다"며 낮은 자세를 보이는 눈에 들어온다.

거의 모든 당정은 전면 비공개 또는 부분적으로 앞부분 인사말 정도만 공개하고 나머지를 비공개로 진행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사안에 따라 회의가 끝난 뒤에 해당 내용은 국회 또는 정부가 브리핑을 진행해 내용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모든 당정협의 내용이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정책 결정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음에 따라 정책의 책임 소재 또한 불분명해지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세법개정안이 지난달 8일 발표됐었을 때 중산층에 대한 세금부담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여론의 반발이 있자, 새누리당은 수정 보안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지난달 5일 당정협의 당시만 해도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정협의 내용에 대해 "(새누리당은) 전체적으로는 이견이 없다"며 "서민·근로자층을 좀 더 배려해줬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사실상 OK사인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법개정안에 대한 여론의 반발이 크자 새누리당은 정부안의 수정 보완해야 한다는 모습을 보였다. 당정협의 내용이 비공개로 진행되다보니 새누리당이 말 바꾸기를 한 것인지 등등은 확인할 수가 없다. 이처럼 당정협의는 해당 정책이 제대로 검토가 이뤄졌는지, 정책에 문제가 있더라도 누구의 잘못인지 책임 소재를 가리기가 어렵다.

이상 당정협의 제도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3가지 문제점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당정협의는 주요 정책협의기구인데도 불구하고 법적인 근거규정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둘째 당정협의는 3권분립의 원칙을 침해할 소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당정협의는 비공개로 진행되다보니, 정책에 대핸 책임소재가 애매해지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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