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운전대 앞에는, 믿고 싶지 않지만 '저승사자'가 상주하고 있다. 운수 나쁜 운전은 그분 보러 가는 지름길일 수 있다. 치명적인 위험 앞에서 목숨을 유지해야 하는 인간은, 긴장을 하게 돼 있다. 운전이 익숙해지면 그 긴장이 사라지는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느긋하게 보이는 그 운전자도, 위험이 느껴지면 고감도 안테나가 고도의 긴장을 회복한다. 그 안테나에 위험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잡히면, 인간은 격분하게 된다. 죽으려고 환장했어?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셋째, 운전대 앞에선 '외눈박이 거인'이 존재한다. 운전자는 차를 타는 순간 거인이 된다. 자동차의 거구(巨軀)는 바로 자신의 몸이다. 소형차를 타는 운전자는 상상의 몸이 약간 작게 부풀고, 큰 차를 타는 운전자는 크게 부푸는 차이가 있다. 차와 자신의 동일시야 말로, 운전 심리의 핵심이다. 자신이 거인이다 보니, 그 자동차 사이즈의 힘으로, 상대를 능히 제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생긴다. 이 거인이 보는 시야는 별로 넓지 않고 그 시선이 그리 차분하지도 않다. 순간적으로 파악하고 판단하는 게 전부다. 전체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 자기가 본 것만으로 분노를 일으키는 외눈박이. 그래서 운전자들은 그토록 쉽게 헐크가 된다.
넷째, '어두운 방' 효과다. 옛사람들은 방 안에 혼자 있을 때, 그때 행동을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이른바 신독(愼獨)이다. 홀로 있을 때 누가 보고 있는 것처럼 삼가고 조심하라는 얘기다. 이런 충고가 있었던 걸 보면, 옛사람들도 혼자 있을 때에 어지간히 지저분한 생각이나 행동을 많이 하지 않았나 싶은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행동이 달라지는 건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운전석에서 욕을 해도 상관없는 건, 대개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독백이나 방백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일은 사회적으로 무해하게 보이지만 이 습관이 남과 함께 탔을 때에도 튀어나온다는 점이 문제다. 어떤 운전자는, 다른 차의 운전석에 앉은 사람의 입모양이 움직이는 걸 보고 뛰어내려 "너, 나 욕했지?"라고 흥분하는 경우가 있다니, 운전석 욕설이 늘 안전한 것도 아니다.
<향상(香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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