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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로드리게스의 경기 출장을 반대하는 야구팬들[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경기 출장을 반대하는 야구팬들[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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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사무국은 지난 6일(이하 한국시간) 바이오제네시스로부터 경기력향상약물(Performance Enhancing Drugs)을 제공받고 복용한 13명의 선수에게 출장정지의 징계를 내렸다. 가장 관심을 모은 선수는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였다. 무려 211경기 출장정지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번 처분으로 로드리게스는 많은 것을 잃게 됐다. 당장 3420만 달러에 달하는 연봉부터 지급받지 못한다. 징계가 끝나면 나이는 만 40세가 된다. 이번 징계가 단순한 금지약물 복용에 대한 처벌이 아닌 ‘은퇴 권고’로 해석되는 이유다.
사실 금적전인 측면에서 손해를 입었다고 보긴 어렵다. 양키스는 계약기간인 2017년까지 총 6100만 달러를 지급해야 한다. 전 소속팀 텍사스 레인저스도 비슷한 부담을 안고 있다. 2001년 체결한 10년 계약(총액 2억5천2백만 달러)에서 지불이 유예된 5천만 달러를 2016년부터 10년에 걸쳐 지급해야 한다.

로드리게스는 이미 1995년 빅리그에 데뷔해 연봉으로만 3억5341만6252달러를 벌었다. 슈퍼스타로서의 명성은 곤두박질쳤지만 금지약물의 힘을 빌려 쌓은 ‘억만장자’라는 금자탑은 무너지지 않은 것이다. 지난 7월 23일 65경기 출장정지의 징계를 받은 라이언 브론(밀워키 브루어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342만 달러의 연봉을 챙기지 못하지만 2021년까지의 잔여연봉 1억5백만 달러를 지급받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들끓는 야구팬들의 분노와 달리 로드리게스는 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메이저리그사무국의 발표에 바로 항소의 뜻을 내비쳤다. 이를 바라보는 메이저리그사무국의 입장은 강경하다. 출장정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영구 출장정지(Lifetime Suspension)도 불사하겠단 입장이다. 이 경우 로드리게스는 9520만 달러의 잔여연봉을 모두 잃게 된다. 1920년 블랙삭스 스캔들로 8명의 선수가 영구 제명된 이래 100여년 만에 역사의 어두운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도 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칼럼리스트 마이클 맥캔은 6일 로드리게스의 출장정지가 법적문제로 비화될 경우 예측되는 행보를 분석해 내놓았다. 이를 ‘길고도 추한 과정(Long and Ugly Process)’이라 규정한 맥캔의 칼럼을 개인적 견해를 덧붙여 풀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변호사, 법률분석가, 작가로 활동하는 맥캔은 뉴햄프셔 대학 로스쿨의 ‘스포츠&엔터테인먼트 법률연구소(SELI)' 창립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간 '예일대학교 법학저널'을 비롯한 20여 매체의 법률자문을 담당했고, 최근에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NBA TV' 등에서 법률 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알렉스 로드리게스[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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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심판

출장정지에 불응하는 로드리게스는 메이저리그사무국에 조정심판(Arbitration)을 요구할 것이다. 이 경우 로드리게스는 조정심판관(Independent Arbitrator)인 프레드릭 호로위츠 앞에 설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인 법정소송과 매우 흡사한 절차다. 로드리게스와 메이저리그사무국의 변호인단이 각각 변론을 하고 증거물을 제시한다. 증인을 채택해 증언을 청취하기도 한다. 물론 조정심판의 격식과 규정은 실제 재판보다 한결 여유롭게 진행된다.

로드리게스의 조정심판 요구에는 두 가지 계산이 깔릴 가능성이 높다. ▲조정심판이 진행되는 기간 출장정지 처분이 정지된단 점 ▲영구 출장정지 등 중징계의 경우 이의를 제기한 선수 측이 승리한 경우가 많았단 점이다. 조정심판을 제기하는 동안 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친다면 그에 따른 동정의 여론도 기대해볼 수 있다.

커미셔너가 직접 영구 출장정지 혹은 그와 비슷한 징계를 내린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양키스의 왼손투수 스티븐 하우다. 1992년 페이 빈센트 당시 커미셔너로부터 영구 출장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사유는 코카인을 비롯한 약물과 알코올 중독이었다.

1980년 로스엔젤레스 다저스에서 신인왕을 차지할 때만 해도 하우의 앞날은 창창해 보였다. 그러나 1983년 알코올과 약물에 빠지기 시작했고, 이후 일곱 차례에 걸쳐 병원과 그라운드를 오고갔다. 1992년에는 코카인을 구입하다 경찰에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하우는 약물 중독 속에 주의력 결핍 장애(Attention Deficit Disorder)도 앓았다.

빈센트 커미셔너는 영구 출장정지를 내린 사유에 대해 “그동안 많은 기회를 줬음에도 기대를 저버렸다. 불법약물에 대해선 불관용(Zero Tolerance) 원칙에 따라 엄중처벌한단 메시지를 리그 전체에 알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하우의 변호인은 “빚어진 물의는 사무국에 대한 무시가 아닌 약물중독 후유증에 따른 것”이라며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겠으나 영구 출장정지는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맞섰다. 조정심판관이던 조지 니콜라우는 합법적 원리(Legal Principle)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하우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말했다.

“커미셔너의 징계는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모든 정황에 적절한 증거가 제시돼야 한다. 영구 출장정지는 야구선수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이는 ‘궁극적인 처벌(the Ultimate Sanction)’이다. 약물 근절을 향한 사무국과 빈센트 커미셔너의 의지를 충분히 이해하나 이번 사례를 선수생명을 끊어놓을 정도의 중죄라 보긴 어렵다. 영구 출장정지는 최악의 위법행위를 저지른 자에게만 가할 수 있다. 하우의 약물중독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징계를 영구 출장정지에서 119일로 감형한다.”

알렉스 로드리게스[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알렉스 로드리게스[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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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게스는 21년 전 하우를 예로 들 가능성이 높다. 영구 출장정지는 물론 211경기 출장정지가 자신이 지은 죄(금지약물복용 등)에 비해 과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여기서 호로위츠 조정심판관이 내릴 판단은 크게 세 가지가 될 수 있다.

1. 현 징계(211경기 출장정지)의 유효성을 인정한다.
2. 징계기간을 줄인다.
3. 징계 자체를 기각한다.

소송공방전

로드리게스는 조정심판에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할 경우 소송이란 카드를 만질 수 있다. 조정심판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송을 제기할 경우 법원은 이를 기각할 것이다. 로드리게스가 미국시민이기에 앞서 메이저리그 구성원이기에 노사단체협약(Collective Bargaining Agreements) 룰에 따른 의사결정 과정을 먼저 밟게 할 것이다.

조정심판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할 경우 그 대상은 메이저리그사무국과 버드 셀릭 커미셔너 그리고 뉴욕 양키스 구단이 될 수 있다. 법원은 징계 결정 과정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다. 야구적인 관점에서 금지약물 복용, 지속적인 거짓말, 타 선수에게 약물 권장, 증거인멸 시도 등의 행동은 큰 잘못이라는 것에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미국 법률로 범위를 넓히면 이는 211경기 출장정지의 중징계를 받을만한 범법행위가 아닐 수도 있다. 이 경우 로드리게스는 오히려 메이저리그사무국, 셀릭 커미셔너, 양키스를 상대로 정신적 고통, 무고죄, 명예훼손 등으로 역고소할 수 있다. 물론 소송으로 극적 뒤집기가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메이저리그사무국의 징계가 법정에서 뒤집힌 사례 역시 역사상 거의 전무하다.

로드리게스의 네 가지 논리

로드리게스는 조정심판에서든, 법정에서든 네 가지 논리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

1. 금지약물의 판매, 유통(Joint Drug Agreement, JDA)에 관여해 적발된 최초의 선수다.

메이저리그사무국은 JDA 규정에 의거해 처벌을 내렸다. 그들은 앞서 JDA를 위반한 선수에게 첫 번째 적발 시 100경기 출장정지, 두 번째 적발 시 영구 출장정지의 징계를 순차적으로 내릴 방침을 세웠다. 그런데 로드리게스는 금지약물과 관련해 공식적인 처벌을 받은 전과가 없는 선수다. 메이저리그사무국은 로드리게스가 초범이지만 지속적으로 JDA를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이와 달리 로드리게스는 JDA를 처음 위반한 선수에게 가해지는 100경기 출장정지가 자신이 받을 징계에 가장 합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버드 셀릭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버드 셀릭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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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뢰할 수 없는 증거물

로드리게스는 메이저리그사무국이 제시한 증거들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확보한 대부분이 토니 보쉬 바이오제네시스 원장의 증언과 증거물인 까닭이다. 보쉬 원장이 감형을 받기 위해 징계협상(a Plea Deal) 뒤 일방적인 증거를 제시했다고 강조할 수 있다. 증거의 신뢰성 자체를 공격한단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제 무덤을 직접 파는 꼴’으로 이어질 수 있다. 브론을 비롯한 나머지 선수들은 50~65경기 출장정지의 징계를 별다른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 메이저리그사무국이 선수들의 입을 다물게 할 결정적인 증거를 다수 보유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최근 ‘뉴욕 데일리뉴스’는 메이저리그사무국이 연방검사들과 금지약물과 관련한 정보를 주고받았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JDA를 위반한 로드리게스는 보쉬 원장으로부터 공급받은 금지약물을 플로리다 주 밖으로 운송했단 정황이 밝혀지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3. 메이저리그사무국과 양키스가 계약을 무효화시키기 위해 공모했다

이번 징계로 양키스는 일단 3420만 달러를 절약하게 됐다. 아직 메이저리그사무국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지만 이 금액은 양키스의 팀 페이롤 집계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양키스가 1억8900만 달러를 넘기지 않고도 로빈슨 카노와의 재계약을 비롯한 다양한 전력보강을 꾀할 수 있단 것을 뜻한다.

메이저리그 노사단체협약은 메이저리그사무국과 구단이 공모해 선수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로드리게스는 이를 이용해 새로운 주장을 펼 수 있다. 메이저리그사무국과 양키스가 자신의 징계를 공모했다는 것이다. 물론 주장이 공론화될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 공모를 입증할만한 증거를 제시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알렉스 로드리게스[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알렉스 로드리게스[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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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메이저리그사무국과 셀릭 커미셔너가 명예를 훼손했다

로드리게스는 메이저리그사무국과 셀릭 커미셔너가 보쉬 원장의 증언에 의존한 일방적인 증거 제시로 자신을 처벌하고 언론에 이를 흘린 것을 두고 명예가 실추됐다고 판단,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는 득보다 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적공방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메이저리그사무국과 몇몇 매체들이 유리한 여론 형성을 위해 약물 문제와 관련한 모든 정보를 폭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선수노조(MLBPA)의 애매한 입장도 로드리게스에겐 걸림돌이다. 그들은 현역선수인 그를 보호해줄 의무가 있지만 쉽게 나설 수 없다. 여론의 질타를 맞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야구선수들의 억만장자 시대를 연 주인공이라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선수들 사이 평판이 좋지 않은데다 리그가 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어 적극적인 감싸기로 얻을 이득이 크지 않다.

오히려 셀릭 커미셔너는 메이저리그를 최고 인기 스포츠로 인도했단 점에서 역대 최고 커미셔너로 인정받을 것이다. 그간 선수들의 금지약물 복용을 은폐했단 지적을 받았지만, 이번 징계로 꼬리표를 뗐다는 평이다. 로드리게스가 스테로이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역사에 남기에 부족함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셀릭 커미셔너와 선수노조는 이번 대대적인 징계로 리그 황금기를 유지할 확실한 이미지 세탁을 했다. 사건이 잊히면 리그는 금지약물 의혹이 없는 새로운 영웅들을 전면에 배치할 것이다. 그렇다고 물음표를 단번에 떨쳐낼 수는 없다. 선수들의 금지약물 사용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대가 계속 바뀌지만 메이저리그는 여전히 돈과 욕망이 불타오르는 곳이다.

김성훈 해외야구 통신원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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