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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선칼럼]'박정희 마케팅'과 염량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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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세금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적을 미화하거나 업적을 기리는 이른바 '박정희 마케팅'이 여기저기서 한창이다. 서울 중구의 '박정희 기념공원'도 그 하나다. 중구는 285억원을 들여 신당동 '박정희 가옥' 일대 4070㎡를 기념공원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박정희 가옥은 박 전 대통령이 '5ㆍ16 쿠데타'를 전후로 3년여간 살았던 곳이다.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10ㆍ26 사태' 이후 잠시 지낸 곳이기도 하다.

중구가 내세운 명분은 '5ㆍ16 혁명 같은 역사적 사건의 흔적을 보존하기 위한 일'이다. '5ㆍ16 혁명 미화 작업'인 셈이다. 논란의 소지가 있다. 게다가 서울엔 이미 지난해 2월 마포 상암동에 문을 연 3층 규모 연면적 5290㎡의 '박정희 기념ㆍ도서관'이 있다. 말들이 많자 박 대통령까지 나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 세금으로 기념공원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도 강행하겠다니, 딱하다.
중구만의 일이 아니다. 경북 구미시는 지난해 11월 '박정희 생가 공원'에 5m 크기의 동상을 세우더니 올 초엔 홍보관인 '민족중흥관'까지 열었다. 앞으로 2015년까지 792억원을 들여 새마을운동 테마공원도 만들 계획이다. 2년 전 박 대통령의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생가를 복원한 충북 옥천군은 그 옆에 140억원의 예산으로 2017년까지 '퍼스트레이디 역사문화교육센터'를 짓기로 했다.

백 번 양보해서 구미와 옥천은 박 전 대통령과 육 여사의 고향이니 그럴 수도 있다 치자. 하룻밤 숙소, 하숙집 등 별의별 인연을 다 동원하는 데는 할 말이 없다. 경북 울릉군은 박 전 대통령이 하룻밤 묵었던 옛 울릉군수 관사를 '박정희 기념관'으로 꾸미고 있다. 지난해 박 전 대통령이 초등학교 교사 때 살았던 하숙집 '청운각'을 기념공원으로 만든 문경시는 올 3월엔 주막까지 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음식이라며, 이름 하여 대통령 비빔밥, 대통령 칼국수, 대통령 국밥 등을 판다.

그런가 하면 강원 철원군은 박 대통령 취임 직후 갈말읍 군탄리의 군탄공원 이름을 '육군대장 박정희 장군 전역지 공원'으로 되돌리기로 했다. 1988년 민주화 바람을 타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자 군탄공원으로 고쳤다가 25년 만에 다시 바꾸기로 한 것이다. 딸이 대통령이 됐다고 '원위치'시키겠다는 얄팍한 수로 비친다.
지자체는 대체로 '관광 수익'을 앞세운다. 실제 전ㆍ현직 대통령의 생가 등이 관광명소가 된 사례는 여럿 있다. 구미의 박 전 대통령 생가는 물론 전남 신안 하의도의 김대중 대통령 생가, 노무현 대통령의 김해 봉하마을은 이름난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지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가 상당하다.

그러나 허울뿐인 기념관이나 하숙집, 하룻밤 숙소,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음식 등을 지역의 특색 있는 관광 자원라고 하긴 어렵다. 속내는 다른 데 있다는 뒷말이 따르는 이유다. 박정희 마케팅을 벌이는 지자체장은 대부분 새누리당 소속이다. 다음 공천 등을 의식해 충성 경쟁을 벌이는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주민의 향수를 선거 때 표로 연결시키려는 전시성 사업이라는 시각도 있다.

비록 전직 대통령이라고는 해도 현직 대통령의 아버지를 대상으로 한 분별 없는 마케팅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 딸이 현직 대통령이 아니라도 그럴까. 아닐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유력 대통령 후보로 부각된 이후 박정희 마케팅이 활발하게 이뤄져 왔다는 점이 그 방증이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5년 후에도 '관광 명소'로 관심을 끌 수 있을까. 세금만 낭비하는 애물단지가 될 공산이 크지 싶다. 염량세태(炎凉世態)란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는지.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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