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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재판 참관기]판사도 놀란 범죄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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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나영 기자]"판례에 따르면 10분 간격으로 3번 음주측정을 요구해야 한다는 지침은 경찰청의 내부지침일 뿐 대외적으로 일반 국민들에게 효력을 미친다거나 법원을 구속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검사석에 앉아있던 한 학생이 재판장을 향해 손을 번쩍 들더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대법원 판례를 읽기 시작했다. 전자기기 사용이 금지된 법정이지만 대학생의 발칙함을 지켜보는 판사의 얼굴엔 미소가 여렸다. "비법률가들임에도 쟁점을 정확하게 짚은 일반인들의 법의식 수준이 놀랍다"
실제 재판을 방불케 한 열띤 공방에 재판장의 찬사가 이어졌다. '열린 법정'의 가능성마저 엿보이는 대목이다.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304호 법정에 둘러앉은 대학생들의 모의법정 풍경이다.

서울고등법원은 7월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을 상대로 매주 사법실무교육과정(인턴십)을 진행 중이다. 법원에 관심 있는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마지막 수업인 모의재판은 인턴십의 백미다. 경찰의 음주측정을 거부하다 재판에 넘겨진 택시기사의 형사 사건이 과제로 주어졌다. 학생들은 첫날 건네받은 모의기록을 검토한 후 검사와 변호인으로 역할을 나눠 재판에 들어갔다. 한 학생은 떨리는 목소리로 변론을 진행하다가 어느새 공평한 반론권을 요청하며 재판장에게 적극적으로 의사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현재 변호인의 주장은 도로교통법의 음주측정관련법의 개정취지를 무시한 것입니다" 검사측은 피고인의 음주운전 정황을 들어 공무집행을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변호인측은 음주운전의 목격자가 없다며 설령 있더라도 체포과정이 적법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고작 이틀 준비로 이뤄진 재판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열띤 공방이 이어졌다. 재판장은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사건 당일 피고인의 행적을 재구성해나가는 과정은 실제 검사의 변론을 보는 것 같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재판장은 재판 도중 스마트폰을 이용해 판례를 근거로 제시한 학생에 대해서도 "실제 재판에서 주요쟁점이 된 부분이었다"고 설명했다.

김민정(20, 성균관대 1학년)학생은 "판사 앞에서 했던 변론 경험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며 "이런 기회가 일반인들에게도 주어지면 서로 상대를 이해할 수 있어 갈등이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서로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면 합의가 보다 수월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2008년부터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은 만 20세 이상의 국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형사재판에 참여하여 유ㆍ무죄 평결을 내린다. 그러나 법적인 구속력이 없어 '국민참여'의 의미가 없다는 문제가 지적돼왔다. 대법원은 국민사법참여위원회 위원들을 발족하고 국민참여재판을 5년간 시행한 뒤 그 성과를 분석해 국민사법참여제도의 최종형태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에 학생들의 모의재판은 현재 거론되는 미국식 배심제, 독일식 참심제, 그리고 배심제와 참심제의 중간형태인 절충형 중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형태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현장의 의견이다.



박나영 기자 boh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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