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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년 전, 인천항이 부산항을 앞섰던 이유

최종수정 2012.07.03 11:00 기사입력 2012.07.0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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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공회의소 창립 127년 맞아 기념식 열어

[아시아경제 노승환 기자]인천상공회의소가 지난 2일로 창립 127주년을 맞았다.

인천상공회의소는 1885년 인천항 인근 객주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인천객주회'가 모태다. 인천객주회는 일본의 압박으로 체결된 강화도조약에 따라 1883년 인천항이 강제 개항된 지 2년 후 설립됐다. 1884년 서울에서 창립된 '한성상업회의소'에 이어 우리나라 두번째로 만들어진 상공회의소였다.
당시 비교적 한적한 포구였던 인천항에서 서울을 제외한 전국 지역 최초로 상공회의소가 결성된 이유는 당시 인천항 객주들의 민족적 자각 때문이었다. 개항과 함께 인천항의 상권을 급속히 장악하기 시작한 일본과 중국, 영국 등 외국 상인들에 위기감을 느낀 우리나라 상인들이 독자적 상권과 민족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단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일본, 중국, 영국 등은 인천항에 '조계지'라 불린 치외법권까지 만들어 인천경제를 쥐락펴락했다. 이에 맞서 인천객주회 소속 상인들은 우리 물건을 독자적으로 유통했다.

이들은 외세에 맞서 지역 경제를 살리고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천 경제를 살찌우자는 마음 만큼은 뜨거웠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상인들이 객주회 소속 중간 상인들을 찾아 짐을 부리고 물건을 떼어 갔다. 중구 신포동과 내동, 용동, 경동 등 외세가 점령하다시피 한 인천항 일대 한복판이 바로 그들의 활동무대였다. 인천객주회는 조금씩 세를 키워 1930년 지금의 '인천상의'란 간판을 내건다. 일제에 의해 여러 번 이름이 뺏기고 바뀌는 수모를 겪었지만 상인들에게 인천 상업의 중심은 늘 인천상의였다. 해방 후 1952년 상공회의소법에 따라 정식 인가를 받은 뒤 인천상의는 눈부신 고속성장의 길에서 인천 상인과 기업과 함께 컸다. 1980년 대 말 인천 최대 공단 남동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주도한 것도 인천상의다. 2012년, 인천상의의 회원은 2천500개 사를 훌쩍 넘는다. 교류활동을 펴고 있는 해외 지역상의도 9개에 이른다.

인천상의는 127살을 넘긴 이날 기술개발, 생산성 향상 등 경제 각 부문에서 남다른 열정을 입증한 기업인 6명에게 서른 번째 상공대상을 수여했다. 이 자리에서 좀처럼 침체의 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경제에 던지는 김광식 인천상의 회장의 다짐은 '초심'이었다. 김 회장은 "127년 역사가 증명하듯 우리 경제사의 굴곡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선배 상공인들을 본받아 새로운 인천을 이룩하는 데 모든 힘과 역량을 모으자"고 말했다.
노승환 기자 todif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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