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죽음 사건' 뇌리에 남아 있는 태화강, 직접 찾아가 보니

[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10년 전만 해도 태화강 근처에 가는 건 꿈도 못 꿨습니다. 악취가 진동했어요."


태화강은 '죽음의 강'이었다. 지난 2000년 6월, 태화강에는 1만여마리의 숭어떼가 배를 드러낸 채 떠올랐다. 빗물 때문에 오염물질이 강으로 대량 유입되면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당시 태화강의 수질은 공업용수로도 쓰기 힘든 5급수 이하였다. 이 사건 이후 울산광역시는 태화강을 '재탄생'시키기 위한 총력전을 벌인다. '기억하기조차 싫은' 물고기 떼죽음 사건 이후로 10여년이 지난 지금, 태화강은 어떤 모습으로 달라졌을까. 지난 1일 태화강을 직접 찾아 변화를 확인했다.

태화강변을 날아가는 백로. 태화강은 현재 국내 최대규모의 백로 단일 서식지다.

태화강변을 날아가는 백로. 태화강은 현재 국내 최대규모의 백로 단일 서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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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 속을 걷다=태화강은 울산시 서북쪽 가지산과 백운산에서 시작돼 울산 도심을 동서로 가로지른다. 울산시 인구 115만명 중 60만명은 태화강 유역에 산다. 그만큼 사람들과 가까이 있는 강이다. 가까이 다가가 본 태화강은 그저 맑고 아름답다. 떼죽음당한 물고기가 썩어가는 악취는 상상하기 어렵다. 강을 따라 펼쳐진 대나무숲을 걸었다. 선바위 인근 태화강변에 자라난 이 대숲은 길이가 10리에 달한다고 해서 '십리대숲'이라고 불린다. 바람이 대나무를 흔드는 소리가 숲을 휘감는다. 강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남산의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대숲 속을 걷는 시간은 도심에서 얻기 어려운 특별한 경험이다. 고개를 들자 대숲 위를 백로가 유유히 맴돌고 있다.

거저 얻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이 대숲도 태화강 복원 노력의 일부분이다. 약 70여만그루의 대숲이 밀집해 있는 태화강변의 태화들은 90년대 건설붐을 타고 1994년 하천구역에서 주거지역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태화강 둔치는 콘크리트 투성이로 삭막한 공업도시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며 태화들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합의가 조성된다. 결국 2005년 택지개발 계획을 수정, 주거지역인 태화들을 다시 하천구역으로 바꿨다. 무분별하게 널려 있던 농사용 비닐하우스와 쓰레기 3500여톤을 치우고 대숲을 중심으로 태화강 대공원을 조성한다. 이 과정에서 사유지를 보상해주는 데 1000억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다. 서울 여의도 공원 2.3배에 달하는 태화강대공원이라는 공간은 이렇게 오랜 시간과 적지 않은 희생을 치른 뒤 만들어졌고, 지금은 울산 사람들의 자랑거리다. "자연 보전을 위해 개발을 되돌린 일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윤영찬 태화강관리단장의 첨언이다.

태화강의 전경.

태화강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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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강'으로=울산은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되며 공업도시로 빠르게 성장한다. 그러나 성장 이면에는 환경 오염의 그림자가 무겁게 드리우고 있었다. 울산은 1인당 연간 소득이 4만달러가 넘는 '부자도시'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산업 공해도시'로 인식돼왔다. 2000년대 들어 울산은 공해도시의 오명을 벗기 위해 노력해왔고, 태화강은 그 노력을 대표한다.

울산시가 본격적으로 태화강 살리기에 나선 것은 지난 2002년. 강으로 유입되는 오염물질을 처리하기 위해 상류와 하류에 하수처리장을 확충하고 4000km에 달하는 하수관거를 정비했다. 강바닥에 쌓인 오니 150만톤을 긁어냈다. 강은 빠르게 화답했다. 2003년 5마리의 연어가 회귀하며 태화강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2010년 태화강을 찾은 연어는 716마리에 달한다. 2007년부터 태화강은 오염물질이 거의 없는 1급수 강이 됐다. '죽음의 강'에서 '생명의 강'으로 완전히 변모한 것이다. 이제 태화강변 대숲에는 여름이면 백로 6000마리가 둥지를 튼다. 우리 나라 최대 규모의 백로 단일 서식지다. 연어뿐만 아니라 은어와 황어도 다시 돌아왔다.


최근에는 30여년간 사라졌던 재첩이 태화강 전역에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재첩은 1급수 맑은 물에서만 볼 수 있는 어패류다. 역시 1급수에서만 사는 천연기념물 제330호 수달까지, 태화강은 이제 '깨끗한 강'의 대명사다.


'태화강 부활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태화강은 오래 전부터 울산의 지역문화를 형성해온 곳이다. 앞으로의 부활 프로젝트는 수질 개선뿐만 아니라 태화강을 시민에게 되돌려주기 위한 계획들을 아우른다. 이미 가동이 중단된 취수탑을 리모델링해 태화강 전망대를 만들었고 명천교와 선바위 사이 약 24km에 산책로와 자전고도로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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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와 함께 '영남 3루'로 불렸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진 태화루도 복원한다. 한진규 울산시 환경녹지국장은 "태화강을 살리는 데는 울산시의 노력뿐만 아니라 지역 기업과 시민들의 참여도 크게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태화루 복원은 울산에 공장을 둔 에쓰오일이 100억원을 기부하며 성사됐다. 지역 환경단체도 태화강 관리에 활발히 참여한다. 십리대숲의 죽순을 함부로 뽑아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도 환경단체다.


마침 이 날 태화강에는 개선 사례를 직접 견학하기 위해 지역자치단체 공무원 200여명이 와 있었다. "그간 태화강이 모범 사례로 전국 여러 지자체에 소개됐죠." 윤 단장의 말이다. 지난 2010년에는 태화강에서 전국수영대회도 열었다. 윤 단장은 "수영대회 참가자들에게 수질이 어땠냐고 물어보니 다른 것보다 '물고기가 너무 많아서 수영을 못 하겠다'고 말하더라"며 밝게 웃었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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