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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이젠 놓아드리겠다"…이병완 전 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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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세상'에 절절한 회고 글 올려

[아시아경제 박충훈 기자]"이제 그를 놓아드리고 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 3주기를 앞둔 16일 이병완 노무현재단 이사(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추모글을 노 전 대통령 공식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에 올려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 이사는 추모글에서 노 전 대통령과의 첫만남부터 탄핵사태, 보수언론매체와의 갈등, 부동산·북핵 정책이 난항할 때 그가 겪었던 고뇌 등에 대해서 간결하면서도 생생한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이병완 이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40대 중반에 찾아온 바람기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2000년 초가을 이 이사가 노 전 대통령에게 먼저 만나자고 '프로포즈'를 했고 인사동 골목 허름한 밥집에서 첫 대면해 '밀어'를 속삭이는 '데이트'를 했으며, 자리가 끝날 즈음 "함께 하자"며 '로맨스'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이사는 이듬해 2월 청와대 언론비서관실을 나오며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동참하게 된다.

이후 2004년 3월에 불거진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해서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던 이병완 이사는 "노무현은 '노무현의 길'을 선택했다"고 술회했다. 노 전 대통령이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내 결심은 분명합니다"라며 거대 야당을 주축으로 한 외압에 굴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 이사는 "3월 12일 오후 5시부터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고 청와대가 암전(暗電)된 그날부터 촛불이 광화문을 밝히기 시작했다"며 "33일이 지난 후 17대 총선 결과가 중계되던 4월 15일 밤. 유폐된 궁궐, 청와대의 관저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고 회상했다. 17대 총선결과가 곧 노무현에 대한 국민의 생각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병완 이사는 "신생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차지했다. 프라이드치킨에 생맥주가 돌았다. 늦은 밤까지 직무정지 대통령도, 주군을 잃은 참모들도 즐거웠다. 국민이 고마웠다"고 당시의 감격을 전했다.
임기를 1년 남짓 남겨둔 2006년 1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강남 부동산 폭등, 북한의 핵실험 감행 등으로 사면초가에 처했다. 정권을 잡고 나서 핵심정책이었던 부동산, 북한 문제 해결 정책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북한이 위조지폐, 돈세탁을 했던 방콕델타아시아(BDA) 사건까지 터지자 노 전 대통령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이병완 이사는 당시 노 전대통령이 "대통령을 이제 그만 두는 게 좋겠소. 모든 것이 무너진 것 같소. 임기를 지킨다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요"라며 독주를 들이켰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같은 문제를 노 전 대통령은 '사즉생(死卽生)'의 정신으로 돌파했다는 것이 이병완 이사의 평가다. 그는 "8·31대책에 금융대책(DTI규제 등)이 병행되면서 다음해(2007년) 중반부터 부동산 열기는 사라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부동산 안정이 지속된 원인도 이에서 비롯됐음은 사실이다. 북핵 실험도 노무현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다음해 10·4남북공동성명으로 이어졌다"고 이후의 상황을 설명했다.

한편 일부 보수 매체와의 끊임 없는 갈등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죽기 전까지 그를 괴롭혔다. 이 이사는 2008년 9월에 있었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의 자녀 결혼식을 예로 들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자신의 재정적 후원자였던 강회장의 자녀 결혼식에 주례를 맡았다.

이 이사는 당시 '초호화 결혼식', '푸른 초원 위에 축하 비행'이라는 자극적 제목을 달고 언론에 보도된 이 행사가 실은 검소한 행사였다고 밝혔다. 비용절감을 위해 강 회장이 운영하는 충북 충주의 골프장에서 아들과 딸이 동시 결혼식을 올렸으며 훗날 이 이사가 물어보니 총경비는 1200만원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병완 이사는 당시 논란을 낳았던 '축하비행'도 강회장과 친분이 있었던 경비행기 매니아가 제안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병완 이사는 2009년 5월 22일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정치 결사체를 만들기로 하고 속리산에서 후일 국민참여당 모태가 된 전국조직 50여명과 결의했던 이튿날 노 전대통령의 자살 소식을 접했다. 그는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러 속리산에서 서울로 차를 몰았고 집에 들어선 순간 '김경수 비서관'의 이름이 휴대폰에 떴다. 가슴이 터질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40대 중반의 '바람'을 불렀던 연정을 털고 그를 역사 속에서, 내일의 미래에서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며 추모글을 마무리했다.



박충훈 기자 parkjo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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