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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권현형의 '살청으로 푸른 빛을 얻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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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기운을 죽여야 한다는,/살청이라는 말이 놀라웠다/무쇠 솥에 찻잎을 덖어서 맛보는 자의/사지가 부드러워지고 혀의 독이 빠지는 순간//들끓는 생각이 묽어지는 그런 때를 말함이라면/껍질 안에서 이미 딱딱해져 있거나/아직 몸이 촉촉한 강낭콩의/푸른 빛을 벗기고 앉아 있을 때/모처럼 둥근 고요가 양푼 가득 찾아오듯이

■ 때론 낱말 하나가 시를 피워올린다. 낱말 속에 이미 시의 기운이 숨어있고 후각이 강한 시인은 그것을 깊이 빨아들인다. 살청(殺靑)은 차(茶)를 만드는 과정에서 쓰이는 용어이다. 산에서 새잎을 따와 두 시간쯤 그늘에서 숨을 죽인 뒤 가마솥에 넣고 덖는다. 이것을 살청이라 한다. 푸른 기운을 살풋 죽이는 것이다. 덜 죽이면 맛과 향이 강하여 속을 아리게 한다. 너무 익히면 풍미가 달아나고 시래기맛이 난다. 이건 또 아니다. 요컨대 살청은 푸른 기운을 꽉 쥐지도 않고 모두 잃지도 않은 '알맞은 죽음'이 노하우이다. 한잔의 차 속에는 인간에게 가장 잘 녹아드는 알맞은 푸른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 차를 마시면 왜 정신이 고즈넉해지는지 알 것도 같다.



이상국 기자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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