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TMI 사고 이전의 원전산업은 단연 미국이 주도하는 상황이었다. 미국은 웨스팅하우스 뿐만이 아니라 GE, 컨버스천 엔지니어링, 밥콕&윌콕스 등의 유수한 원자로 설계업체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캐나다의 AECL이나 러시아의 ASE, 일본의 미츠비시, 히다찌, 도시바 등이 있었지만 기술에서나 시장의 크기에서나 원전의 지배자는 단연 미국이었다. 하지만 TMI 원전 사고 이후 미국은 사고 당사자였던 밥콕&윌콕스가 날아가고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던 자국시장을 잃게 되었다. 이것은 미국의 기술이 세계로 향하는 계기가 되고 여기서 프랑스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원전산업의 전망을 어둡게 본 웨스팅하우스가 프랑스에 원천기술 사용권한을 팔아버렸고, 프랑스의 프라마톰은 한국에 울진 1,2호기 원전을 수출하기에 이른다.
TMI사고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86년에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유럽까지 원전에 대한 공포분위기로 몰아넣었고, 이 이후로 지구상에는 더 이상 원전을 발주하는 나라가 없어졌다. 이 덕에 우리나라는 영광 3,4호기를 기술이전 조건으로 국제입찰에 붙일 수 있게 되고 또 하나의 원전기술 보유국으로 등극하게 된다. 이후 근 20년간 원전은 암흑기를 맞았지만 이 와중에 우리나라는 유일하게 새로운 원전을 꾸준히 지으며 원전 기술의 자립도를 높여왔다.
원전산업은 다시금 새판짜기에 들어갔다. 이것은 기득권자에게는 위기를 도전자에게는 기회를 의미한다. TMI사고는 프랑스를 원전강자로 부상시켰고, 체르노빌 사고 때는 한국이 원전기술 보유국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후쿠시마 사고 역시 분명히 누군가에게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번 사고여파가 앞선 경우와 다른 것은 다른 원전선진국들이 두 번의 학습효과로 원전산업의 끈을 놓지 않고 있고, 개발도상국들은 아직도 원전건설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원전 르네상스 이후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던 일본이 주춤거리고 원전기술의 화두가 용량증대와 효율에서 절대안전으로 옮겨가는 변화는 분명히 우리에게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다른 원전기술 보유국과 우리나라가 다른 점은 우리는 자국 내에 원전을 건설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건설할 것을 천명하고 있는 국가라는 점이다. 덕분에 우리는 원전 부품 제조기술과 계측제어 기술과 같은 저변 기술에도 많은 발전을 해 왔다. 지금이야말로 지금까지의 노력을 발판 삼아 세계로 향해 뻗어 나아갈 때다. 국가 차원의 수출에만 의존하지 말고 개개 회사들 역시 자력으로 자기 제품을 가지고 세계시장으로 뛰쳐나갈 기회이다. 원전 사고 이전보다 오히려 더욱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발 빠르게 절대안전을 실현해 나간다면 원전 산업은 우리나라의 향후 30년을 책임져줄 황금거위가 될 것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