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검지 쇼핑'
[아시아경제 채정선 기자]
14일, 밀라노에서 이탈리아 남성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의 2012년 가을·겨울 컬렉션이 시작됐다. 그 시각, 서울 한쪽에서도 그 쇼를 지켜 보려 기다리고 있던 차. 아무리 빨라도 시간차를 두고 볼 수 있던 컬렉션, 이제는 지구 저 편의 쇼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적어도 스마트폰과 태블릿 피시만 있다면 가능한 일. 게다가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다는 것, 패션이 '검지'와 친해지고 있었다.
▶ 실시간 쇼를 보며 제품 구매를 동시에
이번 가을·겨울 시즌,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아이폰과 아이패드 유저를 위한 '제냐 라이브(Zegna Live)'를 만들었다. 이 어플리케이션은 밀라노에서 진행되는 패션쇼는 물론 백스테이지까지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패션쇼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것, 물론 신선하다. 그러나 이러한 플랫폼은 워낙 흔하던 차.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신선도는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선주문'을 가능케 한 것에 있었다.
제냐는 패션쇼를 통해 선보인 컬렉션 상품과 아이템들을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아직은 미주, 아시아, 유럽 등 온라인스토어 운영 지역에 한한 서비스였지만 주문한 옷은 온라인 스토어와 마찬가지로 즉시 배송된다. 제냐 측은 이번 컬렉션의 경우, 주문하면 최대 5일 이내 상품을 배송 받을 수 있다고 전한다.
이번 제냐 라이브는 남성복 브랜드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일이다. 늘 색다른 시도로 앞장서는 제냐가 온라인에서 저지른 또 한 번의 흥미로운 도발인 셈이다. 여성복에서는 제냐에 앞서 버버리(Burberry)가 패션쇼를 현장에 가지 않고도 버버리 온라인(live.burberry.com)을 통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버버리의 이러한 온라인 움직임은 속도로 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라. 현장에 있는 2000여명만이 실시간으로 참관할 수 있던 패션쇼가 전 세계 소비자들의 안방에 침투했다는 것. 이건 실로 패션 역사에 기록할만한 일이다.
또한 버버리는 2010∼2011 가을·겨울 여성복 패션쇼를 프랑스 파리,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영국 런던, 미국 뉴욕, 일본 도쿄 등 5개 도시에서 동시 생중계했다. 재미있게도 이 생중계는 3D로 진행되었다. 이밖에도 버버리는 전 세계 매장 25곳에 ‘리테일 시어터(Retail Theatre)’라고 하는 것을 구축한 뒤 이곳에서 2011년 봄·여름 여성복 컬렉션을 생중계로 볼 수 있게 했다. 보고 난 뒤에는 등장한 컬렉션 의상들을 아이패드로 직접 주문하는 ‘런웨이 투 리얼리티(Runway to reality)’ 행사를 열기도 했는데, 이러한 이벤트는 국내 갤러리아백화점에서 진행된 바 있다.
▶ 패션쇼,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활약
생중계를 넘어 다음 컬렉션이 매장에 들어서기 몇 개월 전, 더 빨리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 전 세계 패션 피플들에게는 실로 흥분되는 일이다. 이러한 생중계만이 아니라 업계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좀 더 친숙하고 세련된 브랜드 이미지를 가꾸느라 분주하다.
지난 2012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버버리는 트위터와 파트너십을 통해 ‘버버리 프로섬 트윗 토크쇼’란 형식으로 패션쇼를 진행한 적이 있다. 쇼장의 모든 이미지들은 트위터 이미지로 중계되었으며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통해서는 실시간 영상을 볼 수 있던 일종의 이벤트였다. 이미 트위터를 적극 활용하는 브랜드들이 트위트로 실시간 상황을 중계해주고 있기는 하나 이렇게 이벤트로 적극 활용하는 브랜드로는 역시 버버리를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온라인, 실시간만이 성황은 아니다. 페이스북에 진입하는 패션 브랜드가 늘면서 컨콘텐츠 경합 또한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12월, 롱샴은 공식 페이스북((http://www.facebook.com/pages/Longchamp-Korea)을 통해 짧은 단편과 같은 ‘하이힐(Heels)’ 시리즈를 선보였었다. 7개 에피소드를 단계적으로 공개한 롱샴의 이번 영상물은 한국을 포함한 프랑스, 독일, 영국 등 5개국에만 방영되었다. 배우들의 얼굴이 보여 지지 않은 채, 오직 주인공들의 스타일만으로 캐릭터를 짐작케 하는 이 영상물은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영상으로 눈길을 끈다. 이제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콘텐츠의 수준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확신할만한 시점이 아닐까 싶은 정도다.
롱샴의 ‘하이힐’처럼 스토리를 가진 영상물을 이벤트성으로 제작해 보여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패션 하우스는 새 시즌의 시작에 앞서 짧은 영상물을 웹사이트에 띄워 보여준다. 30초에서 1분여에 이르는 영상물들은 대체로 그 시즌의 핵심 키워드를 요약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브랜드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영상물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 독창적이고 전위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패션 하우스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Maison Martin Margiela)다. 새 시즌에 맞춰 어김없이 등장하는 영상물들은 늘 위트 있고 섬세하다.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현해주는데 부족함이 없는 대표적인 패션 브랜드 웹사이트다.
온라인에서 다소 낮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럭셔리 제품의 인터넷 판매율이 오는 2015년까지 매해 20%씩 증가할 것이라고 이탈리아 명품 협회 알타감마(Altagamma)가 발표한 바 있다. 여기서 언급하는 온라인은 스마트폰, 태블릿 피시와 함께 성장하게 될 것이라 예견된다. 럭셔리 브랜드 카테고리도 더는 간과할 수 없는 온라인 시장, 손 안의 휴대용 전자 기기들이 갈수록 화려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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