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죽느냐 사느냐 ?"..생존마저 벅찬 혹한기
[아시아경제 황준호 기자] "경기가 참 어렵다. 아파트가 안 팔리면서부터다. 땅도 팔고 건물도 헐값에 팔았다. 옆집도 집이 안팔리면서 경쟁적으로 가격을 내렸다. 자식들도 내보냈다. 짜고 짜내도 생활하기 힘든데 내년은 더 힘들 거란다."
한 가장의 일기가 아니다. 요즘 건설사 CEO들의 한결같은 고민이다. 팔고 짜르고 줄이고 깎아도 살아 남을지 알 수 없을 지경이라고 토로한다. 황량해진 마음 속에 찬바람만이 가득하다.
국내 5대 건설사인 A사는 경영계획을 잡으면서 내년 아파트 공급량을 대폭 줄였다. 재건축 사업만 추진한다. 그래도 불안하다. 회사 유지를 위해 해외 건설 수주만 바라보고 있다. 플랜트 사업본부 임원들을 대거 승진시키고 직원 충원에 나서고 있다.
중견건설사인 B사는 최근 홍보팀을 없애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아파트 분양마케팅팀만 강화했다. 넘쳐나는 미분양으로 수익 창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짜내고 짜낸 자구책이라는 게 이 수준이다.
왕년에 잘 나가던 C사는 올초부터 사옥 매각을 추진 중이지만 파리만 날리고 있다. 파리들은 800억원 규모 사옥을 왔다갔다하며 저울질만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돈 내밀고 사겠다는 사람은 없다.
워크아웃 중인 D사는 모기업, 채권단과의 협의가 차일피일 늦춰지고 있다. 모기업은 인력 구조조정 등을 전제로 채권단에 신규 자금 지원과 채무 만기 연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모기업 인수전 잘 나가던 E사 직원들은 모기업의 이같은 처사가 어이없기만 하다.
집 사재기 열풍이 불던 2000년 초반대 건설사 직원들은 강남 밤문화를 주름잡았다. 차 트렁크 안에 현금 다발을 싸들고 다니며 땅을 사들였다는 전설의 직원도 있었다. 건설사 TV광고에 나와야 '아, 잘나가는 연예인이구나'하는 시절이었다.
현재 건설사들은 반성하고 있다. 소위 잘 나갈 때 치밀한 시장 조사 등을 통해 사업 구상 변화에 나섰어야 한다는 자책이다. 하지만 버스 지나간 뒤 손 흔드는 격이다.
내년 건설사들은 올해보다 더 험난한 길을 예상한다. 올해는 그나마 지방 분양 훈풍이 건설사를 지탱했지만 내년은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는 판단이다. 정부가 거래세도 줄이고 투기과열지구를 푸는 등 시장 정상화에 나선다고 하나, 일종의 희망고문처럼 느낀다.
다만 몇몇 건설사들이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집을 사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다. 수요조사를 통해 평면을 달리 구성한다. 청약대상자들을 조사해 원하는 시설을 주민공동공간에 설치한다. 분양가를 주변 시세보다 크게 낮춰 분양하기도 한다. 이들 건설사들의 아파트는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평형에 관계없고 지역에 관계없다. 내년 건설사의 화두가 '소통'이 되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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