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백호 임제 '월남사 터를 지나며(過月南寺遺址)'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이것이 옛 월남사던가/ 안개노을 지금 적막해라/ 산은 다시 황금빛 벽을 비추고/ 물은 스스로 어둑한 아침을 보내네/ 옛탑은 시골담장으로 바뀌었고/ 남은 비석은 돌다리가 되었네/ 무(無) 한 글자가 원래 귀한 비밀이거늘/ 흥망을 따져 헛짓 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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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 임제 '월남사 터를 지나며(過月南寺遺址)'
■ 월출산에 돋는 달을 보려면 우선 산의 서쪽에 있어야 한다. 거기 서서 오른팔을 벋으면 저쪽에 월남사 절터를 가리키게 된다. 고려 때 진각스님이 지은 평지가람으로 알려져 있다. 월남이란 떠오른 달의 남쪽이기도 하지만 월출산의 남쪽이기도 하다. 안개노을 낀 곳, 그곳은 바로 월출산이다. 달이 뜨니 황금빛 절벽이 비치고, 물은 저녁인지 아침인지 알 수 없는 빛으로 빛나고 있다. 월남사 탑은 어느 집의 담장처럼 삐뚜름히 서있고, 깨진 비석은 개울에 돌다리로 쓰이고 있다. 임제는 오히려 그런 풍경들을 보면서, 인간이 만든 것들이 사라져가는 그것이야 말로 우주 만고의 진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고려 유신들은 이런 장면에서 사라져간 왕조나 문명을 떠올리며 비감해했지만, 그는, 그런 흥망에 감정을 불어넣는 일조차 생략했다. 초연한 그의 태도가 오히려 마음을 붙잡는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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