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선 칼럼]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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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어경선 논설위원]한낮의 볕은 아직 따사롭다. 하지만 바람은 차다.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고 손은 주머니 속으로 기어든다. 은행잎은 벌써 노랗게 물들어 행인들의 발아래 하나둘 스러진다. 독일의 시인 안톤 슈나크가 '대체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읊은 그 가을이다.


생각하면 슬픈 게 어디 '우는 아이'와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우리 안에 갇힌 범'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을 볼 때나 '병실에 누워 있거나 사랑하는 이의 편지가 오지 않을 때'뿐이겠는가. 둘러보면 곳곳에 넘쳐나는 게 슬픈 일들이다.

대통령 퇴임 후에 살 집을 아들 이름으로 사고, 9개 필지 가운데 3개 필지는 아들과 대통령실 공동소유라 하고, 아들은 공시지가로 싸게 구입하고 경호처는 공시지가의 4배로 비싸게 샀다고 하는, 그 지극히 부적절한 '땅 사랑'. "실수나 오해가 있어서지, 비리는 없다"는 청와대, 그저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대통령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큰 표 차로 지고도 다른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몇 곳에서 승리했다고 "이겼다고도 졌다고도 할 수 없다"는 얼빠진 집권 여당 대표. "선거에서 보여준 젊은 세대들 뜻을 깊이 새기겠다"면서 불통의 상징인 '명박산성'의 장본인을 경호처장으로 임명한 오만함. 쇄신에 나서기는커녕 선거 패배를 두고 누구 책임이 더 크니 쌈질이나 하는 집권당을 볼 때도 우리는 우울하다.

어디 그뿐이랴. 2억원의 '통 큰 선의'를 하필이면 선거 때 경쟁자였다 후보를 사퇴한 이에게 베푼 어느 교육감.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당선되자 "나를 '친북좌파 패륜 폴리페서'로 몰았던 한나라당, 조중동 및 극우수구파 네티즌 여러분, 계속 그렇게 사십시오.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라고 악담을 퍼부은 모 국립대 교수. 2007년 대선 후보 때 '거스를 수 없는 세계화의 흐름'이라며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지지를 호소하고는 이제와 "당시에는 (내용을) 잘 몰랐다"며 국회 비준을 극력 반대하는 한 야당의원의 뻔뻔스러움을 볼 때. 늘 저만 옳고, 제 잇속에 득이 될 일만 찾아다니는 무수한 '정치 협잡꾼'들이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당선 후 청사에 첫 출근한 서울시장이 간부직원들에게 "제가 뿔이 하나 달린 그런 사람은 아니죠"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아무리 우스갯소리라고 해도 그런 말이 아직도 얘깃거리가 되는 현실이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양극화로 계층 갈등은 더 깊어지고 이젠 세대갈등까지 커지고 있는 판에 교과서에 '민주주의'를 넣느니 '자유민주주의'를 넣느니 하는, 쓰잘머리 없는 이념 논쟁에 넌더리가 난다.


말로는 동반성장을 한다면서도 실천에는 소극적인 대기업. 남들은 몇 십 년을 일해도 오르기 힘든 높은 자리에 나이 어린 자식들을 거리낌없이 앉히는 회장님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울 압구정동 일대의 빌딩을 사들여 명품 패션매장으로 꾸미고 있다는 모모한 재벌가의 따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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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대학을 졸업하고도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백수가 되거나 비정규직에라도 목을 매야 하는 청년들, 뛰는 전월세 값을 마련하지 못해 변두리로 변두리로 내몰리는 서민들, 껑충 오른 물가 때문에 장보기가 겁난다는 아내들. 은행이나 카드사들은 이자와 수수료로 어마어마한 이익을 올렸다고 하는데 오르는 대출금 이자에 가슴을 쳐야 하는 못난 가장들. 10년 후라고 뭐 달라지겠느냐는 좌절감…. 그 모든 것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리고 모 케이블TV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으로부터는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인터넷 투표와 시청자 문자 투표에서 뒤져 더 이상 경연에 나서지 못하게 된 탈락자. 그가 이른바 '뚱뚱하고 얼굴이 그저그런' 여자였을 때. 예상이 들어맞은 것 같아 왠지 서글퍼진다.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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