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IB를 가다]이혜나 노무라증권 상무, 규제와 자본은 반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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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지선호 기자] 홍콩현지의 글로벌 투자은행(IB)하우스에서 활약하는 한국인은 의외로 적지 않다. IB업계 특성상 한국인간에도 교류가 활발하지 않아 정확한 숫자 파악이 어렵지만 100여명 선에 이르는 것으로 현지 관계자들은 추산한다. '리서치'에서부터 '리테일'영업까지 업무영역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외형확대를 꾀하고 있는 중국계 IB에도 한국인들의 입사가 줄을 있고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가장 성공한 한국인으로 윤치원 UBS 아시아·태평양(AP) 회장이 손꼽힌다. 국내에는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홍콩 자본시장에서는 명성을 날리고 있는 인물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하고 MIT 슬론스쿨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이후 줄곧 글로벌 IB에서 경력을 쌓았다. 메릴린치 뉴욕지점에 입사한 이후 리먼브러더스와 SBC워버그를 거쳐 1997년 UBS에 합류했다.

윤 회장이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인도네시아 포르투갈 브라질 등 여러 나라에서 학창시절을 보내 일찍부터 국제감각을 키운 '해외파'라면 이혜나 노무라증권 홍콩법인 상무는 한국 증권사를 거쳐 비상장사의 주식중개사업체까지 운영한 토종파다.


지난 9일 홍콩 금융중심가인 센트럴 IFC에서 만난 이혜나(사진) 상무는 우리나라 파생상품 1세대다. 파생상품 시장에 대한 이해가 많지 않던 90년대 초반부터 관심을 갖고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과를 다니던 중에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 상무는 신한금융투자의 전신인 쌍용증권에 입사한 후 삼성증권, 하나대투증권으로 자리를 옮기며 파생금융 쪽에서 경력을 쌓았다.

특히 그는 IT버블로 증시가 뜨겁게 달아올랐던 지난 2000년에 투자자문사에서 IT회사를 상장하는 업무를 맡기도 했다. 이후 직접 회사를 차려 장외시장에서 거래되는 기업을 매수한 후 되팔아 70억원의 차익을 거두는 수완도 보였다. 이 상무는 "당시 IT버블이 심해 실질 가치보다 훨씬 비싼 값에 기업이 팔리는 것을 보면서 회의를 느꼈다"며 7개월 만에 회사를 접었다고 한다.


2007년 리먼브라더스로 자리를 옮긴 이 상무는 2008년에 금융위기로 회사가 파산 후 상황도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 상무는 "당시에는 상사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오면 대부분 해고통보였을 정도로 살벌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라증권이 리먼브라더스의 아시아와 유럽부문을 인수하면서 자연스럽게 현재 위치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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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노무라로 옮기면서 홍콩으로 오게 됐는데 일의 강도가 무척 세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7시에 시작하는 회의를 맞추기 위해 매일 6시50분까지 출근하고 있다. 또 유럽, 아시아, 북미, 남미로 이어지는 증시를 따라가다 보면 업무는 오후 5~6시에 끝난다. 또 거래를 정리하고 자료를 입력하는 일을 마치고 나면 저녁 8시가 다 되서야 퇴근할 수 있다. 이 상무는 "옆에 있는 인도 직원이 나만 보면 한국어로 '피곤해요, 피곤해요'라며 울상이다"라고 전했다.


최근 국내 금융당국이 주식워렌트증권(ELW) 거래 시 기본예탁금을 신설하도록 하는 등 규제 가 강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이 상무는 "규제가 많으면 ELW상품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면서 "규제보다는 투자자 교육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ELW는 모르고 투자하면 자금을 잃을 확률이 90%이지만, 알고 투자하면 이익을 낼 확률이 80%인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이규성 기자 bobos@
지선호 기자 like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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