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준 기자의 CINEMASCOPE - '코파카바나'
[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어머니와 딸의 미묘한 관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화의 주요 소재다. 밋밋하고 심심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와는 달리, 어머니와 딸은 한때는 서로 원수이기도 했다가 친구가 되기도 한다. 딸이 점점 나이가 들어가며 둘의 관계는 자연스레 전도된다. 딸은 보호자 혹은 어떤 의미로는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 자신의 보호자였던 어머니를 보살핀다. 연극과 영화, 소설 등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다룬 작품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충무로만 해도 김혜자와 故 최진실이 주연했던 ‘마요네즈’와 고두심·전도연의 ‘인어공주‘, 김영애· 최강희의 ‘애자’ 등의 영화가 어머니와 딸 사이의 애증 관계를 다뤘다. 셜리 맥클레인과 데브라 윙어 주연의 ‘애정의 조건’과 잉마르 베리만의 ‘가을소나타’, 영국 좌파 감독 마이크 리 조차 ‘비밀과 거짓말’로 서로 전혀 다른 모녀의 이야기를 그렸다.
브라질 리우에 있는 휴양지 이름에서 제목을 가져온 프랑스 영화 ‘코파카바나 Copacabana’의 주인공 역시 엄마와 딸이다. 그것도 성격과 생활 태도가 너무 달라 도저히 함께 참고 살아갈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앙숙이다. 영화의 주인공 바부(이자벨 위페르 분)는 전형적인 철없는 엄마. 미래에 대한 계획도 그럴듯한 직장에 다녀본 적도 없는, 여전히 10대 소녀의 감성에 멈춰있는 구닥다리 여자다. 이런 엄마가 부끄럽기만 한 딸 에스메랄다(롤리타 샤마 분)는 자신의 결혼식에 엄마가 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엄마에게 털어놓는다. 충격 받은 바부는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프랑스를 떠나 벨기에로 가서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콘도 회원권 영업 사원이 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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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영화들이 고지식한 엄마와 자유분방한 딸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코파카바나’는 그 반대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연기하는 바부는 벨기에에서 새롭게 사귄 사람들과 난생 처음 제대로 된 사회화 과정을 겪으면서 아주 늦은 성장통을 경험한다. 영화는 딸과 어머니 사이에서 벌어질 법한 에피소드가 아닌, 바부가 천천히 변화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극 중 에스메랄다 역으로 출연한 배우 롤리타 샤마가 이자벨 위페르의 실제 딸이라는 점이다.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궁금증이 돋을 만큼 둘의 화학반응은 시쳇말로 끝내준다.
과거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차갑고 도도하고 이지적인 이미지의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는 ‘코파카바나’에서 정확히 이 정반대에 위치한 뜨겁고 무식하지만 무척 흥미로운 캐릭터 바부 역을 완벽하게 체화해냈다. 미카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에서 면도칼로 자해하던 그 여자와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다. 이자벨 위페르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코파카바나’는 충분히 ‘강추’ 영화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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