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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영어에 목숨 걸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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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우리 사회에서 지식계층일수록 영어에 대한 충정은 깊다. 영어를 국어로 채택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일반서민들조차 자녀 영어교육에 바치는 열정은 지극정성이다.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의 성장주의식 교육 방법인 전과목 영어 수업도 그 하나다.

하지만 빗나간 열정에 불과하다. 학생들이 자살하면서 여러 문제점 중 하나로 드러났지만 가장 큰 문제일 수도 있다. 인간의 인식체계는 언어로 구성돼 있으며, 언어가 없이는 어떤 인식도 불가능하다. 그것은 우리의 사고체계 및 인식 축적이 다른 언어로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면적인 영어 수업은 교수ㆍ학생간의 소통과 인식의 충돌을 야기하고 학습의 생산성을 떨어뜨렸을 것이다. 어떤 무리가 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언어의 속성상 우리의 사유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말한다.
왜 우리는 영어교육에 그처럼 몰두하는가 ? 그건 영어를 쓰는 사람들과의 비즈니스 즉 경제활동의 필요성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그만큼 커서다. 지금 현실은 곧 중국의 경제가 미국의 경제를 넘어서려고 한다. 가령 중국의 경제 지배력이 미국을 능가할 땐 또 한자로 수업하자고 주장할 것인가 ? 우리가 영어나 한자를 국어로 채택했을 때 우리가 이루는 모든 재부, 문화를 그들 언어로 축적하고, 관리하기는 불가능하다.

15세기 인류에게 두개의 복음이 전해졌다. 그중의 하나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술이다. 귀족집안 출신으로 금은세공사인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함으로써 책의 대량공급이 가능해졌다. 물론 금속활자의 발명은 13세기 고려시대에서 시작돼 조선조에 이르러서는 더욱 심화, 발전된 것이기는 하다. 일단 구텐베르크의 활자술이 등장함에 따라 인류의 정보전달 및 지식 축적 능력은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이후 활자술은 종교혁명, 자본주의 혁명의 기폭제가 됐다.

즉 활자술의 등장은 오늘날 인터넷혁명 정도와는 비교도 안 된다.
또 하나의 복음은 '한글' 창제다. 그러나 그 복음은 오랫동안 인류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한글은 조선의 위대한 CEO인 세종에 의해 고안된 문자다. 세종은 신생조선의 백성과 경영자간의 거대한 소통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 당시 조선은 모든 백성이 지식과 정보, 교육, 과학, 문화 축적을 도모하고, 독점적 지배세력 외의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축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바로 누구나 쓸 수 있는 오픈 아키텍처의 구축이 시대 정신이었던 셈이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이가 많아" 고안된 한글은 "비록 문자가 간단하지만 그 전환이 무궁무진하다." 신개념 디지털화된 문자 특성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세종 시대의 경제적 생산성이 크게 늘어나 기존 언어방식으로 그 생산성을 축적, 관리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세종시대엔 국토와 인구, 각종 과학문명, 경제 환경이 크게 확장되고 초일류 과학기술입국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15세기 인류가 창안한 과학기술은 총 50여건. 그 중 중국 20건, 세종의 조선 20건, 일본, 유럽이 나머지 10건을 창안했다. 중국이 1세기 동안 이룩한 업적을 세종은 당대에 이룩했으니 당시 조선의 기술력이 어느 정도 선진적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한자로는 선진기술과 여기서 파생하는 거대한 생산성을 관리, 축적할 수 없었다. 기본적인 커뮤니티가 안 되고, 정보전달, 기술 습득이 안 되니 부국의 꿈을 한자가 가로막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구텐베르크의 활자술과는 달리 한글은 5세기 동안 어둠에 갇혀 있었다. 기득권들이 철저히 봉쇄하고, 짓밟고, 수모를 가하고 업신여겼기 때문이다. 한문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실제로 세종은 수년 이상 한글창제 TF팀을 비밀리에 운영했으며 프로젝트 완성 이후에도 2년이라는 시간을 더 허비해야했다. 한글이라는 오픈 아키텍처가 지배세력의 억압에서 실제로 우리에게 건네진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글은 구텐베르크의 활자술만큼이나 지배계급을 공포로 몰아넣은 대선언이자 혁명였다. 아마도 한글이 상용화되고 제대로 쓰여졌다면 인류문명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활자술과 한글이 결합했다면 인류는 보다 빠른 진보ㆍ진화를 체험했을 수도 있다. 21세기 최고의 지성인 촘스키는 "한글은 꿈의 환상적인 언어"라고 일컬었다. 고은선생은 "한글이야말로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글은 꿈의 언어며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이다.

물론 이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다. 한글의 보급으로 우리 노동력을 고급화시킬 수 있었고 문화 축적이 비약적으로 가능해졌다. 인류 역사상 30여년만에 문맹을 퇴치한 족속은 우리말고는 없다. 다섯살 아이가 며칠만에 익힐 수 있는 문자는 인류에게 한글이 유일하다.

한글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육성이 가능했다. 영어나 한자를 쓰고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아날로그 세상을 디지털화해갈 것이고, 더 높게 문화와 지식을 축적하게 될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우리만큼 완벽한 문자해독과 정보전달력을 지닌 나라는 단연코 없다. 그게 한글의 혁명적 속성이다.

영어 중심적 사고는 한자 중심적 사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들이 모두 영어를 쓰게 된다면 잘 살 것인가 ? 그곳으로 우리를 반드시 인도할 자신이 있는가? 필리핀이나 그외 영어를 국어로 채택한 나라들이 다 잘 살고 있는가? 서남표식 영어 일방적 교육을 반성함에 있어 "그래도 영어로 하는 수업 방식은 긍정적이야" 하는 정도의 수준 낮은 사고나 계속할 지 걱정스럽다.

우리에게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의 지식을 우리 텍스트로 전환하고, 우리 식으로 축적하고, 소통하며, 그들과의 비즈니스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다. 훌륭한 지성, 학식, 인격을 가지고도 때로 우리가 가진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백성과 세종 사이에 놓인 귀족꼴이 되고 만다.

"중국과 나랏말쌈이 서로 다르니 한자를 그냥 쓰면 백성들의 생산성이 절대로 늘지 않기 때문"에 세종 자신도 목숨 걸고 한글을 만든 것이다. 그냥 한자나 쓰고 있으면 백성이 굶주리기 때문이다. 영어도 그렇다. 물론 한글 원리주의도 옳지는 않다. 언어는 항상 삶의 형태, 경제적 생산성에 맞게 변화한다. 따라서 서남표식 영어 일방주의로는 결코 바른 길을 찾을 수 없다. 영어교육을 하지 말자는 얘기로 들렸다면 오해다. 다만 젊은 생목숨들 영어 때문에 빼앗기지 말아야겠기에 하는 말이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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