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덕방' 시대로 돌아간 부동산중개업소
거래 거의 없고 손님들 신세한탄에 하루 보내..."부동산 하락기의 씁쓸한 풍경"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수도권 한 신도시 소재 부동산 중개업소 A씨 사무실에는 요즘 '돈벌이'가 되는 거래 업무가 뚝 끊어졌다. 그나마 이사철이 돼 늘어났던 전ㆍ월세도 3월 들어 눈에 띄게 줄었고, 주 수입원이었던 매매는 입주가 시작된 신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한 두 건이 고작이다.
대신 집을 팔려는 사람들과 사려는 사람들이 A씨를 붙잡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소연하는 바람에 '고충 상담'을 해주느라 하루를 다 보내고 있다.
A씨는 "요즘 우리 가게는 영업장이 아니라 고민상담소다. 거래는 없고 손님들의 신세 한탄을 들어 주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며 "동네사람들이 나와서 각종 고민 상담을 하던 옛날의 '복덕방'으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호소했다.
24일 부동산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요즘 부동산 업소 관계자들은 A씨 처럼 본연의 업무인 거래ㆍ알선 대신에 밀려드는 상담ㆍ문의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예전에 상담이라야 "어디에 집을 사야 값이 오르냐"는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은 거래가 거의 드문 가운데, 대내외적인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갈피를 못 잡는 사람들의 각종 상담과 고충을 들어 주느라 정신이 없다.
특히 A씨처럼 입주 중인 신도시 아파트 주변 중개업소들이 가장 골치가 아프다. 우선 입주 일정에 쫓기고 있는 분양자들의 하소연이 가장 간절하다. 집을 팔려는 이들은 누가 사가지 않아 자칫 입주 제한일을 넘겨 10%대의 연체 이자만 꼬박 꼬박 물어야 하는 처지를 호소하고 있다. 마이너스 프리미엄을 얹어 줘야 간신히 매수자가 나서는데, 분양자의 쓰린 속을 달래는 일은 고스란히 중개인들의 몫이다.
내친 김에 그냥 입주하려는 이들도 기존 집이 팔리지 않아 마음 고생이 심하다. 무작정 중개업소에 전화를 걸어 "방법이 없냐"며 호소한다.
대화가 좀 길어진다 싶으면 정부의 무대책과 "소비자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건설업체에 대한 원망도 '필수 코스'로 나온다.
집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정작 집 값 하락이 '대세'라는 생각에 매수하지는 않으면서도 "더 싼 집 없냐, 언제 집을 사야 하냐"고 진지하게 상담해 온다.
상담에 응하는 부동산 업소 사람들도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대내외 정세가 워낙 불투명해 누구도 자신있는 대답을 하지 못해 "좀 참고 기다려보시라"는 말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거래를 성사해야 수입을 올릴 수 있을 텐데, 정작 고민 상담만 잔뜩 들어주고 성사된 거래는 거의 없어 생계를 걱정하는 이들도 많다.
A씨는 "전화나 방문을 통해 상담을 하는 이들이 많은데 장래 거래를 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 거절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며 "한국사회가 사실상 처음으로 맞이한 부동산 하락기의 씁쓸한 풍경"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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