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결은'안전불감증·탁상행정·제도적 허점

인천 남구의 한 신축건물. 기울어져 있는게 육안으로도 쉽게 관측된다. 사진=김봉수기자

인천 남구의 한 신축건물. 기울어져 있는게 육안으로도 쉽게 관측된다. 사진=김봉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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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지난 7일 오전 인천 남구 숭의동 309-18 소재 신축 건물 건설 현장.


이 건물은 최근 준공 검사를 앞둔 상태에서 지반 침하로 인해 2도 정도 기울어진 것이 발견돼 문제가 된 바로 그 지상 9층짜리 신축 주상복합건물이다.

준공 검사를 앞두고 마무리공사가 진행 중인 이 건물의 겉모습은 말끔하게 새로 지은 티가 났지만 멀리서 봐도 왠지 이상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건물이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좀 더 뒤로 물러나 건물을 자세히 관찰하니 확실히 불안감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건물이 오른쪽 앞으로 약간 기울어진 상태였다. 아찔했다.


특히 이면 도로에 위치해 있는 이 건물은 주변이 주택들로 둘러 싸여 있고, 길 건너에는 조그만 공장도 있어 만약 붕괴될 경우 심각한 피해가 우려됐다.


이에 따라 이날 만난 인근 주택에 사는 주민들이나 공장 근로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건물 앞을 지나가던 한 주민은 "미처 몰랐는데 지금 보니 기울어져 있어 깜짝 놀랐다"며 "혹시 내가 지나갈 때 건물이 무너지기라도 할까 겁난다"고 말했다.


건물 앞 부품 공장 한 직원도 "저게 어느 순간 보니 기울어 있었다"며 "솔직히 일하러 공장에 올 때마다 의식하게 된다. 직원들끼리 농담 비슷하게 저거 무너지기 전에 생명 보험이라도 들어 놓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 건물은 지난해 9월 착공된 연면적 670.56㎡ 의 주상복합건물로, 2~5층은 근린생활시설, 6층 이상은 다세대 주택으로 설계됐다.


기울어진 게 발견되자 시공업체가 지난달 14일 지반의 빈틈에 콘크리트를 붓는 보강 공사를 했지만 계속 침하돼 현재는 전문업체가 땅에 강관 27개를 박는 공법으로 보강 공사를 재시공 중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문제는 이곳의 지반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별 일 없겠지'라며 공사를 강행한 건축주의 안전 불감증과 관할 남구청의 '탁상 행정', 그리고 제도적 허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매립지인 이 건물 주변에선 지난 2003년에도 지반 침하로 건물이 기울어진 사건이 있었다. 건축주와 남구청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건축주는 이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집 지어 팔 것만 생각한 영세업체가 조속한 완공 및 분양에만 신경 쓰다가 결국 파일 27개를 새로 박아 넣어야 해 공기가 늦춰지는 것은 물론 보강 공사비 2억원 이상을 더 쓰게 생겼다.


남구청도 손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사건이 불거진 후에야 건축주로 하여금 보강 공사를 하도록 하고 전문 감리자의 안전진단을 받은 후에야 건물 사용 승인을 내주겠다는 방침을 세워 놓은 상태다. 또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한 준비도 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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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제도상의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현재 건축법상 건물 신축시 20m 이상을 굴착할 경우에만 지질 조사를 하도록 돼 있는데, 해당 건물은 4m만 굴착해 지질 조사 의무 대상이 아니었다. 단단한 지반에 짓는 건물이야 상관없지만 이번 사건과 같이 매립지 등 지반이 약한 곳에 건물을 지을 경우 보다 철저하게 지질 조사 및 보강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남구청도 이와 관련 국토부에 "지반이 약한 곳에서 건물을 지을 때 반경 200m 내에 2개 이상의 조사공을 뚫어 지질 기초 조사를 실시하도록 의무화 해달라"고 건의한 상태다.


남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현재 더 이상의 건물 기울어짐 현상은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파일 17개를 더 박고 전문가들에 의해 건물의 안전이 확인된 후에야 사용 승인을 내줄 계획"이라며 "이런 건물이 어떻게 지어질 수 있었는지, 그 과정에 관여한 사람들의 법적인 책임 소재는 없는 지도 살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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